이걸 세계화 현상으로 볼 수 있을까. ‘파나마문서’(Panama papers)라고 했나. 세계 엘리트 계층의 탈세, 돈 세탁, 불법자금 은닉을 도운 파나마 로 펌의 내부 자료가 폭로됐다. 거기에 오른 명단이 가히 세계적이어서 하는 말이다.
푸틴에, 시진핑에, 캐머런에, 또 무바라크, 카다피 등 내로라하는 중동의 독재자 이름은 거의 다 들어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마오쩌둥이란 이름도 나온다. 그리고 클린턴이란 이름도 간접적으로 들먹여진다. 한국도 빠질 수 없다. 전두환, 노태우란 이름이 어른거린다.
이는 꽤나 알려진 정치인들이고 포브스선정 500대 억만장자 중 29명, 배우 청룽에 축구스타 메시의 이름 등도 그 명단에 포함돼 있다.
이 파나마문서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수퍼 리치(super rich)는 너와 나와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포린 폴리시지의 지적이다. 그럴 것으로 진작 알았다. 그러나 폭로된 내부 자료는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훔치고,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 시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동(東)과 서(西)가 총망라돼 있다.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이 혼재돼 있다. 독재체제든 민주체제든. 그런 그들만의 룰(rule)이 따로 있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국적이니 하는 것은 그들에게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일종의 초(超)국적자인 셈이다. ‘세계의 가진 자 상위 1%’- 그들 세계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상품, 그리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세계화의 혜택을 톡톡히 누린다. 그런데 그걸 탈세에, 불법 재산은닉 등에 악용하는 거다.
국제금융청렴조사위원회(GFI)에 따르면 이 상위 1%들의 탈세로 2004~20013년 기간 동안 개발도상국에서 유출된 자금은 7조8,000억 달러에 이른다. 이 상위 1%의 은닉 재산은 20조 달러에 이르러 미국의 국내 총생산을 크게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손쉽게 탈세를 저지르는 동안 그 부담은 나머지 99%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경기불황, 대규모 실업사태 등의 폐해는 못 가진 자 99%의 몫이 됐다는 것이 타임지 분석이다. 그러니까 1%들이 런던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들면서 자금을 멋대로 이동시키는 동안 디트로이트 주민들은 폐허 더미 속에서 세 부담에 허덕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뭔가 잘 못 되어도 상당히 잘못 됐다 -.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만연된 정서다. 이와 함께 그동안 국제정치의 키워드로 떠오른 것은 불만과 불안정성이었다.
튀니지의 노점상 청년은 왜 분신자살을 했나. 무엇이 아랍의 봄을 촉발시켰나. 왜 유럽에서는 반 이민정서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나. 그리스는 왜 저지경이 됐나. 왜 중국에서는 수천, 수만 건의 파업시위가 발생하고 있나. 왜. 왜. 왜….
지금에 와서 보면 그 잇단 ‘왜’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자명해 보인다. 파나마 문서가 많은 것을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서는 동시에 뭔가 세계의 정치적 흐름을 예시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속아왔다는 99%의 감정이 파나마 문서 폭로를 통해 확신으로 변하면서 분노로 번지고 있다. 국제정치의 키워드는 불안정성에서 ‘분노(anger)’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는 계속 확산되면서 기존의 정치프레임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 아웃사이더들이다. 거기다가 70대 고령이다. 미국의 대선정국을 뒤엎고 있는 트럼프와 샌더스의 돌풍도, 또 극우세력이 전면으로 부상한 유럽의 정치기상도도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춤을 춘다. 70넘은 노인이. 그것도 모자라 가발까지 쓰고 골반을 튕긴다. 느닷없이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한다. 그것도 떼거리로. 그뿐인가. 멀쩡한 머리를 박박 깎는다. 뭔지 모르지만 좌우간 사죄를 한다는 거다. 오직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벌이는 해프닝이다.
멀리서 보이는 총선정국의 한국정치권 모습이다. 폭력공천도 마다 않는 오만의 극치를 달리다가 망가지기에, 사죄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그렇다. 조울증도 지나쳐 일종의 분열증세로 보인다.
하기는 친박도 모자라 진박 타령에, 비노니, 친문 패거리에다가, 대통령 사진을 존영(尊影)이니 어쩌니 할 때부터 알아보았다.
정책대결이니 시대정신이니 하는 것은 당초부터 염두에도 없었다. 오직 ‘권력의 심기’만이 관심사다. 그래서 투표 막판작전도 거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통령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하는 읍소작전이다.
흙 수저, 금 수저가 유행어다. ‘갑질’에 ‘헬조선’이 화두로 떠 오른 지 오래다. 무엇을 말하나. 대한민국의 가진 자 상위 1%에 대해 99%가 절망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국사회의 갈등과 분노는 폭발 직전에 있다는 이야기로 들리는 것이다.
총선 이후의 한국 정국이 오히려 더 걱정된다.
<
옥세철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