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떼 지어, 그것도 길바닥에서 큰절을 하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4.13 총선 대구지역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들이다. 대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박근혜 땅’이다. 허수아비에 새누리당 빨간 점퍼만 입혀놓아도 당선이 될 만한 곳이다. 지역 주민들의 ‘박근혜 사랑’은 그만큼 절대적이다.
그런 대구에서 새누리당, 그중에서도 친박인 소위‘ 진실한 사람’들이‘ 용서해달라’며 무릎 꿇고 사죄의 절을 했다. 친박 실세이자 대구^경북 선거대책위원장인 최경환 의원은“ 새누리당 후보들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마음의 문을 열어 달라”며 단체 큰절을 지휘했다. 공천과정의 오만함, 내편 네편 가르는 패거리 싸움, 거기에 더한 ‘대통령 존영’ 반납 논란 등 낯 뜨거운 일들을몰아서 반성하며 용서를 구한다는 것이다.
철석같이 믿었던 대구 민심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되었다는 말, 지역구민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 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잔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원칙을 실행하고 실감하는 축제이다. 국민들은 후보들이 제시하는 정책과 비전으로 가슴이 뛰어야 하겠지만 그런 기억은 아득하고 이번 총선은 특히 그와 거리가 멀다.
이슈로 치열해야 할 선거유세가‘ 미워도 다시 한 번’식의 읍소공세로 바뀐것은 새누리당, 그리고 대구 지역만이 아니다. 야권의 텃밭인 호남, 광주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단체 큰절을 했다. 지난 며칠 단체, 개별 합쳐 길바닥에서 큰절한 후보들이 수십명이라니 이걸 선거 전략이라고 해야 할지‘쇼’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유권자들이 마음의 문을 닫았고, 다급해진 여야 지도부가 동정심 유발로 표 구걸에 나섰다는 정도가 분명해 보일 뿐이다.
유권자들의 차가운 반응에 당황한 새누리당은 큰절에 더해 반성과 다짐의 노래 동영상을 온라인에 올렸다.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당 중진들이 늘어서서 “정신 차릴게요, 안 싸울게요, 일할게요, 잘 할게요”하고 합창하는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다. 돌아선 민심, 등 돌린 표심 … 어떻게 하든 유권자들을 달래보겠다고 유치원 수준의 재롱을 불사하고 있다.“ 권력이뭐 길래 ~” 싶다.
대의민주주의는 소통을 전제로 한다. 국민과 그들이 선출한 대표들 사이에 소통이 원활해야 제대로 작동이 된다. 선거는 소통성적 매기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임기 내내‘ 정신 못 차리고, 싸움만 하고, 일 안하던’ 정치인들이 선거철에만 지역구로 달려와 반짝 관심을 보인다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세상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 소통이다. 마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소통은 말 한마디 없이도 가능하면서 백 마디 말로도 안 되기도 한다.
수 천리 떨어져서도 가능한 반면 바로 옆에서도 불가능하기도 하다.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하고 눈이 안보여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LA의 브레일 시각장애인 학교에서 컴퓨터를 가르치는여교사 부부의 이야기를 읽었다. 남편은 청각장애로 태어나 실명까지 겹친시청각 장애인이고, 아내는 LACC 재학 중 근처에 있는 브레일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장애인들과 인연을 맺게되었다. 두 사람은 남편이 헬렌 켈러시청각 장애인 학교를 졸업한 후 브레일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알게 돼 5년 전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촉각 수화를 한다. 아내가 수화를 할 때 남편은 양손을 아내의 손 위에 얹고 손가락 움직임을 읽는다. 손을 맞잡아야 말을 할 수가 있다.
대화는 정겹고 고요하다. 그렇게 그 부부는 온갖 말을 다하고 싸움도 한다.
귀가 안 들리면 수화로, 눈도 안보이면 촉각 수화로 … 소통하고 싶은 마음만있으면 소통은 어떤 조건에서도 가능하다.
유권자들과의 빠른 소통을 위해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SNS가 특별히 많이 동원되었다. 카카오톡과 트위터가 후보와 유권자들을 바로 연결시켜주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만든 선거홍보 동영상 여러 개가 유튜브에 올라있다. 동영상은 유권자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2030 세대를 특별히 겨냥한 것인데 올리는 족족 수준 미달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성에 대한 편견, 청년들에 대한 그릇된 인식만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소통은 양측의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신뢰는 꾸준한 관심과 진정성을바탕으로 형성된다. 큰절한다고, 동영상에 젊은 아이돌 등장시킨다고 유권자들이 감음해서 마음의 문을 열지는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 한국의 유권자들이 확실하게 보여주기를 바란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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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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