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 한국 국회의원 선거, 극단주의 무슬림 청년들의 테러… 요즘 가장 관심이 가는 뉴스들이다. 하지만 뉴스는 뉴스일 뿐. ‘국가장래’나 ‘세계 평화’가 개인적 걱정을 압도하지는 못한다. 자신의 고민을 다룬 이야기가 있으면 관심은 그리로 먼저 쏠린다. 이번 주 LA타임스에 실린 ‘자녀 짝 지어주기’ 보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그랬다.
남가주의 김재동 종신부제가 주축이 되어 진행하고 있는 청실홍실 운동이 지난 29일 LA 타임스 1면에 소개되었다. 서른 중반 넘어 마흔이 되도록 결혼을 안(못)하는 자녀들 때문에 밤잠 못자고 속 끓이던 한인부모들이 직접 자녀들 중매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매년 봄과 가을에 열리는 청실홍실 모임은 올해로 6년, 16번 진행되면서 남가주 한인사회에서는 꽤 알려져 있다.
때로 본인이 직접 나와서, 대개는 부모가 “이런 신랑^신붓감이 있다”고 소개한 후 당사자들의 맞선을 주선하는 행사이다.
이번 LA타임스 보도로 ‘청실홍실’은 지리적으로 남가주를 넘고, 언어로 한국어권을 넘었다. 우선 영어권인 한인2세들에게 알려졌다. SNS를 통해 기사가 2세들 사이에 한바탕 돌았다. “우리 부모들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아울러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각 지역 각 문화권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 왔다.
위장내과 의사인 김 부제는 좀 과장하면 갑자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반응이 대단합니다. 호주의 TV 방송국에서도 연락이 오고, 타일랜드에서도 전화가 왔습니다. 멕시칸 커뮤니티에서도 관심을 보입니다. 자기들도 그런 모임이 필요한 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것이지요.”
젊은이들 결혼 주선은 “요즘 온 세상에서 필요한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나이 들면 당연히 하는 것이던 ‘결혼’이 점점 ‘선택’이 되어가는 추세 때문이다. 세계 어디서나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아예 안하는 인구도 늘고 있다.
미국에서 1960년대 초혼 평균연령은 20대 초반이었다. 서른 살에도 결혼을 안 한 사람은 여성 8%, 남성 13%에 불과했다. 지금은 초혼 남녀 중 서른살 이상이 여성 1/3, 남성 40%이다. 한인사회에도 서른 넘어 미혼인 2세들은 너무나 많다. 청실홍실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하고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직장이 변변치 못해 경제력이 없어 결혼을 못하는 경우(주로 남성)도 있고,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며 자유롭게 사는 게 좋아 결혼을 안 하는 경우(주로 여성)도 있다. 일이 너무 바빠서 사람 만날 틈이 없는 경우도 있고, 눈이 높아 사람을 너무 고르는 경우도 있다. ‘결혼’ 이야기만 꺼내면 거부반응을 보이는 한인청년들 중에는 동성애자도 없지 않다.
이런 개인적 이유들 외에 젊은이들이 배우자감을 만나지 못하는 데는 사회적 원인이 있다. 시간을 가지고 서로를 알아가며 사귈 수 있는 환경, 삶의 공동체가 사라졌다. 고향과 교회이다.
20세기 중반만 해도 같은 동네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니고 교회에서 매주 만나며 자연스럽게 사귀고 결혼하던 것이 미국인들의 보편적 삶의 모습이었다. 젊은이들은 주로 가족·친척이나 교회를 통해서 배우자를 만났다.
인구조사국 통계를 보면 1940년 도시거주 인구는 전체 인구의 57%였던 데 비해 2010년에는 81%로 늘었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말이다. 한편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인구는 30년대 40년대 출생자 중 절반 이상인 반면 80년대 90년대 출생자들 중에서는 1/4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삶과 만남의 중심이 되던 정신적 정서적 축이 약해지고 있다.
한인 2세들의 환경도 비슷하다. 대학 가면서 집을 떠나고 직장 잡으면서 타 지역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손에 이끌려 다니던 한인교회와도 자연스럽게 멀어지니 동년배 한인들과 어울릴 기회는 거의 없다. 한인부모들이 애가 타는 이유이다.
자녀 결혼을 위해 부모들이 나서는 것은 한인 커뮤니티만은 아니다. 인도계, 아르메니안 등 이민 커뮤니티가 비슷한 고민을 하며 결혼적령기 젊은이들 만남의 자리를 만들고 있다.
“결혼 꼭 할 필요 있을까?” 하던 젊은이들도 30대 중반이 되면 대개 생각이 바뀐다. 자유를 누릴 만큼 누리고 나면 안정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늦게 배우자를 찾으려다 결혼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 삶의 이치이다.
성인자녀들이 일찍 깨달았으면 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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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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