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무서운 것은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몸에서 증세가 나타났다 하면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되었다는 말이 된다. 외부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입해 발병하는 전염병들은 대개 치료가 쉽다. 간단한 감기에만 걸려도 발열,기침, 가래 등 증세가 나타나서 환자는 바로 치료를 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감기와 발병 부위가 비슷해도 폐암 등 암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한참 병이 깊어지도록 자각 증세가 없다. 기침도 하고 열도 나면서 몸에 신호를 보내주면 좋으련만, 암은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암은 외부 침입자가아니라 우리 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같은 몸을 구성하던 세포가 세포분열과정에서의 어떤 실수나 어떤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DNA가 손상되면서 엉뚱한 세포로 변이된다. 암세포이다.미국을 강타한 9.11테러가 외부 침입자에 의한 세균성 질환이라면 유럽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테러는암에 해당한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동안 암세포는 사회 내부에서오랜 세월 증식해 마침내 증세가 나타나는 시점에 이르렀다. 병은 깊고치료는 어렵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낯설었던 지명이 이제는 너무 친숙해졌다. 벨기에의수도, 브뤼셀의 한 구역인 몰렌베크이다. 지난해 11월의 파리 테러, 며칠 전의 브뤼셀 테러 모두 이곳이 근원지이다. 모로코 이민자들이 밀집한 이 빈민가에서 같이 자라고 연줄연줄 알게 된 친구들이 머리를 맞대고 테러를 음모하고 함께 폭탄을 제조하며 네트웍을 형성하고 있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대부분 프랑스나 벨기에 태생인 이들 청년이 태어나고 자란 모국을 알라의 적이라며 응징을 준비하는 동안 치안당국은 낌새도 채지 못했다.
파리와 브뤼셀을 중심으로 한 최근 테러 사이클의 시작은 2014년 5월이었다. 당시 프랑스 태생의 IS 추종자가 브뤼셀의 유태인 박물관에서 총기를 난사해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 8월에는 모로코 태생 무슬림이 파리 행 고속열차를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두 사건의 범인 모두 몰렌베크 거주자였다.
이어 샤를리 에브도 편집국 난입사건을 시작으로 터진 2015년의 크고 작은테러마다 몰렌베크가 연루되었다.
유럽에서 이라크나 시리아로 가서 IS 전사로 훈련받고 온 급진 무슬림이가장 많은 곳은 프랑스(2015년 기준 1,200명), 인구대비 가장 많은 곳은 벨기에(400여명)이다. 그중에서도 몰렌 베크가 테러의 요람이 된 것은 벨기에정부의 무능과 상관이 있다.인구 1,100만의 입헌군주국가 벨기에는 중앙 집권력이 약한 나라이다. 과거 네덜란드와 한 나라였다가 분리된역사, 한때 프랑스에 합병되었던 역사로 인해 벨기에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북부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남부로 갈라져 갈등과 분열의 골이 깊다.
작은 나라가 연방정부를 구성해 사사건건 대립하니 통치가 제대로 될 리가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일종의 방임주의이다. 가능한 한 간섭하지 않고 각자알아서 사는 것이다. 그러니 이민자에 대한 정책이 있을 리가 없다. 값싼 노동력이 필요해서 이민자들을 불러들였지만 그리고는 그만이었다. 이민자의권익신장이나 문화적 종교적 갈등 등 이민이슈에 대해서 당국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지난 반세기 몰렌베크는 주류사회와 멀리 떨어진 채 무슬림 빈민촌으로방치되었고, 그 안에서 젊은 세대의 소외감은 깊었다. 교육에서도 취업에서도 차별 받는 그들이 내일을 꿈꿀 수는 없었다. 사회를 구성하는 세포로서DNA 손상과 변이가 이어졌을 것이다.
변이를 부추기는 환경적 요인으로 가장 강력한 것은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교육. 유럽에서 소속감을 갖지 못하던 무슬림 젊은 세대는 IS의 환대에 빠져들며 이슬람 전사로 거듭났다.
이번 브뤼셀 테러에서는 형제가 나란히 자살폭탄 조끼를 입고 자폭했다.
지난 파리 테러 공범자들 중에도 형제가 있었다. 형제가 같이 목숨을 바칠만큼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확신이 그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무슬림과 비 무슬림, 좋은 편과 나쁜 편으로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가 심어진 결과이다.
유럽의 병이 깊다. 나라마다 무슬림 인구는 날로 증가하는 데 대부분 주류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채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불만세력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타락한 서구문명 응징에 한 몸 바치겠다”는 급진 이슬람 청년들,‘ 몰렌베크의 친구들’이 도처에 퍼져있다.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하지 않도록 하려면 테러 대비 치안강화는 필수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이민자들을 진짜 자기 국민으로끌어안는 포용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차별과 분리가 계속되는 한 증오의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증오를 양분으로 암세포는 계속 증식할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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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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