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광주의 신문화 발상지인 양림동 오웬기념각
광주의 근대가 시작된 마을이 있다. 근대의 풍경을 100년 넘게 지키고 있는 광주 양림동 이야기다.
고운 처마 선의 한옥과 이국적인 서양식 벽돌집이 공존하는 동네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이 함께 숨을 쉬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봄볕 가득한 양림동 근대 골목을 걸으며 100년의 시간여행, 동서양의 공간여행을 떠나보자.
1882년 한미통상조약이 체결된 이후 이 땅에 제일 먼저 몰려든 이들은 선교사들이었다. 눈 파란 외국인들이터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 양림동 뒷산은 풍장 터였다. 몹쓸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의 시신을 내다버리는 곳이었다. 모두들 외면하던 그 땅에 선교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선교사들은 사재를 털고 본국에서 후원을 받아 학교를 짓고 병원을 세웠다. 그들에게 배고프고 몸이 아픈 이들이 몰려들었다. 양림동은 ‘서양촌’이라 불리며 광주의 근대발전소 역할을 하게됐다.
1899년에 건축된 이장우ㆍ최승효 가옥.
신문화 발상지 오웬기념각 선교사가 구축한 마을이어서인가 교회가 많다. 광주양림교회란 같은 이름의 교회도 3개나 된다. 교단이 분리되며 생긴 일이라고. 양림동을 안내한 문화해설사 조만수(58)씨는 “양림교회에서 만나자고 하면 허탕칠 수 있다”며 “교회 이름 앞에 교단을 뜻하는 기장, 통합, 합동이나 교회의 특징인 언덕 위, 정원, 계단 등을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이 예쁜 통합양림교회 옆에있는 오웬기념각이 첫 탐방지다. 오웬은 선교와 의료봉사에 헌신하다 1909년에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떴다.
한국에 온 지 5년 만에 사망한 오웬과 그가 존경했던 할아버지를 함께 기념하기 위해 올린 건물이다.
191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근대 광주의 신문화 발상지였다. 교회 행사는 물론 크고 작은 강연회와 음악회, 영화, 연극, 무용 등의 공연이 펼쳐졌다. 건물엔 남녀가 출입하는 문이 따로 달려있다. 실내에도 천으로 휘장을 쳐 남자와 여자의 공간을 나눴다고 한다. 조씨는 “어릴 때 자주 왔다”고 했다. 특히 크리스마스 이브엔 빵하고 학용품을 받기 위해 빠지지 않고 왔다고. 드라마 ‘각시탈’의 무대로 나와 낯이 익다.
펭귄마을
고아ㆍ한센병 환자 보듬던 윌슨 사택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엔 윌슨(한국명 우일선) 사택이 있다. 윌슨 선교사가 고아와 환자들과 함께 머물고자 지은 집이다. 광주에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주택이다. 그는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정성이 지극했다. 그 집으론 좁아 1912년 광주한센병원을 지었고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자 나중엔 여수에 애양원까지 개척하게 됐다.
광주 최초의 고아시설인 충현원도 이 건물이 출발점이다. 한 두 명 데리고 있던 것이 6ㆍ25 이후 전쟁고아들이 많아지자 충현원 건물을 지어 분리한 것이다.
집 주변엔 미국에서 옮겨 심은 피칸나무와 흑호도나무들이 많다. 조씨는 “당시 어린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선교사들이 일부러 심은 나무”라며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아침 일찍 열매를 주우러 이 언덕을 올랐다”고 회상했다. 이국적인 풍경 때문에 주말이면 웨딩사진 촬영을 위해 오는 이들이 많다. 윌슨 사택 오른쪽으로 산길이 이어진다. 언덕의 꼭대기엔 이곳에서 활동하다 목숨을 잃은 선교사들이 묻힌 선교사묘원이 있다. 오웬 선교사 등 22명의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의 무덤들이다.
호남 여성교육의 산실 수피아여학교 윌슨 사택 아래로 수령 400년 된 호랑가시나무를 지나면 선교사 유진벨이 세운 수피아여학교로 이어진다.
3ㆍ1운동 기념 동상
유진벨은 1907년 선교부 직원의 자녀들을 가르치다 다음해 남학생을 위한 숭일학교와 여학생을 위한 수피아여학교를 세웠다. 학교 안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서양식 건물 3채가 있다. 수피아홀은 꽤 큰 규모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제니 스피어를 기념하기 위해 1911년 그의 언니가 헌금한 돈으로 건축된 건물로 광주여학교였던 교명이 수피아여학교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커티스메모리얼홀은 1층은 거주 공간, 2층은 강당으로 사용되는 교회 건물이다. 간결하면서도 매력적인 모양새다. 교정엔 3ㆍ1운동 기념 동상이 서있다. 동상 밑에는 3ㆍ1운동 당시 옥고를 치른 2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태극기를 들고 시위 군중의 맨 앞에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군의 칼에 왼팔이 잘리자 오른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흔들었다던 윤형숙의 이름이 윤혈여로 기록돼 있다.
빼어난 한옥 이장우ㆍ최승효 가옥 양림동엔 빼어난 맵시의 한옥도 둥지를 틀고 있다.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가옥이 대표적이다. 1899년에 건축된 이장우 가옥은 당시에는 보기힘든 솟을대문까지 갖춘 부잣집이다.
당시 상류층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다. 전통 한옥과 달리 마루에 유리문을 덧대 한기를 막았고, 일자형이 일반적인 남부지방 건축양식과 달리ㄱ자 형태다. 마당에는 커다란 돌거북이 누워있는 일본풍의 정원도 조성돼 있다. 높은 담벼락에 기대 오죽과 황칠나무도 자란다. 영화 ‘위험한 상견례’를 찍은 곳이라고.
최승효 가옥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1920년대 지어진 이 집은 독립운동가 최상현의 집이었고 다락에 독립운동가를 피신시킨 걸로 유명하다.
마을 초입에 있는 선조 때 지극한 효자였던 정엄 선생의 효자비와 충견상도 애틋하다. 정엄 선생이 써준 서신을 한양과 평양까지 배달했다는 총명한 개다. 살아서 충성을 다했던 개가 죽어서도 주인의 곁을 지키고 서있다.
팔로군대합창 만든 정율성 거리도 양림동엔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 있다. 정율성(1914~1976) 거리다. 광주 숭일학교를 마치고 1933년 항일 운동에 가담한 형들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옌안의 루쉰예술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1939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옌안송 팔로군대합창 등을 만들었다. 이 팔로군대합창은 1949년 중국 건국과 함께 인민해방군가로 불리다 정식 군가로 비준 받은 유명한 곡이다.
한옥과 근대건축물을 잇는 골목 곳곳엔 볼거리들이 많다. 양림동 출신 시인 김현승의 호를 딴 다형다방과 시인의 벤치, 양림동 선교의 중심인물들로 꾸며진 ‘양림동 최후의 만찬’ 부조, 벽면 가득 크게 그려 놓은 양림동 지도 등이 시선을 끈다. 별거 아닌데 별게 돼버린 펭귄마을 광주 양림동에서 요즘 가장 핫한곳은 ‘펭귄마을’이다. 양림동주민센터 바로 뒤편에 있다.
동네 담벼락에는 아기자기한 작품과 1970~80년대에 쓰던 온갖 잡동사니가 걸려 있다.
골목길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수많은 시와 벽화 등의 작품들 대부분은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내 건 것들이다. 골목의 균열이 생긴 담벼락에 나무를 그려 넣는가 하면 투박하지만 정감 넘치는 글귀로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었다. 펭귄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동네 한가운데에 있는 펭귄시계점이다. 고장 난 오래된 벽시계부터 손목시계 등 수십여 개를 모아 걸어놓고 보니 특별한 작품으로 탄생됐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펭귄주막은 마을 문화의 중심이다. 50년도 더 됐다는 이 주막은 마을 주민들이 동네 일을 상의하고 함께 윷을 노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주막 주위엔 수십여 종의 양철냄비와 주전자가 대롱대롱 매달려 재미를 더한다. 언뜻 구질구질해 보일 수 있는 소품들이지만 그걸 덮는 익살과 풍자가 있어 즐거운 골목이다.
펭귄마을이 탄생한 건 3년 전쯤. 펭귄마을 촌장인 김동균(63)씨의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빈집 터에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었다. 주민들이 합심해 치운 쓰레기가 두 트럭이 넘었다. 그렇게 빈 공간을 우리가 가꿔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렇게 예술정원 펭귄텃밭이 만들어졌고 그곳을 시작으로 마을의 골목골목에 ‘예술’이 접목되기 시작했다.
김 촌장은 “그냥 취미 삼아 한 건데, 별거 아닌 것이 별게 돼버렸다”고 했다. 펭귄마을이란 이름도 촌장이 작명했다.
다리가 불편한 마을 친구가 뒤뚱뒤뚱 걷는 것을 보고 펭귄이 떠올라 이름 붙였다고. 그의 기발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금간 벽을 활용한 벽화도, 마을에 붙어있는 ‘술과 밤이있는 한 남녀 사이는 친구가 될 수없다’‘ 유행 따라 살지 말고 형편 따라 살자’ 같은 재치 있는 글귀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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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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