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상태와 흥정의 상관관계, 결혼식·생일 준비·장례식 가격 잘 안 깎아 펑펑
▶ 감정행위 땐 더 싼 대용품 있어도 비싼 것 선택, “돈과 물건은 별개” 대리인 통해 사는 것이 현명
“물건 구입시 애틋한 감정이 끼어들면 예산에 구멍이 뚫린다.” 사랑이라는 뜨거운 감정에 휘둘려 올바른 구매결정을 내리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학술단체인 SJDM(Society for Judgement and Decision Making)은 최근 학회지에 발표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감정이 증폭된 심리상태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평소와 달리 흥정을 하지 않으려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장례식이나 결혼식, 혹은 생일을 준비하기 위해 상품이나 서비스 구입에 나선 사람들은 거래 조건과 가격에 대한 줄다리기 흥정을 기피한다.
평소 가격후려치기를 즐기던 사람도 이런 상황에 처하면 셀러 측이 제시하는 가격과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곤 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만 하다.
SJDM의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학자들은 감정에 사로잡힌 소비자들은 가격이 더 싼 대용품이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보다 훨씬 비싼 아이템을 선택하는 공통된 경향을 보인다고 전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볼더 소재 콜로라도대학 리즈경영대학원의 마케팅 심리학 부교수 피터 맥그로는 “사람들은 대체로 경비 절감에 적극적이지만 될 수 있는 한 ‘사랑’에 가격표를 붙이지 않으려든다”며 “특히 감정이 깃든 이벤트를 준비할 때는 할인가격에 판매되는 헐값 아이템을 구입하는 것조차 불편해 한다”고 말했다.
맥그로는 “평소 사랑하고 존경하던 할아버지의 관을 구입할 때 장의사와 가격흥정을 벌이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범주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은 약혼반지 시나리오로 ‘감정 구매’ 이론을 예시했다. 프로포즈를 하려는 남성에게 비슷한 가격대의 반지 2개 중 한 개에는 비싼 가격표를, 다른 하나에는 싼 가격표를 달아서 보여주면 거의 예외 없이 비싼 쪽을 골라잡는다는 것.
생일과 기념일 등 프러포즈보다 훨씬 흔한 이벤트용 ‘구매행동’에도 사랑은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갓 태어난 신생아에게 줄 선물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아기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 치여 부모들은 허황된 구매결정을 내리곤 한다.
그러나 사랑과 구매행위 사이의 강력한 연관성은 결혼과 같은 대형 행사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신소비자 심리분석’이라는 책을 펴낸 키트 야로우는 결혼에 앞서 예비 신랑과 신부는 짧은 시간에 여러 종류의 물품을 다량으로 구입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한마디로 출렁대는 감정에 빠져 건전한 소비행위가 실종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결혼기획사인 더나트닷컴(TheKnot.com)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014년도에 결혼식을 올린 커플의 절반가량이 “원래 잡아놓았던 예산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고 털어놓았다.
올해 결혼식 평균 비용도 3만 1,213달러를 기록하며 사상최고점을 찍었다.
결혼식 못지않게 장례식 준비도 감정의 강력한 지배를 받는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장례경비 비교샤핑을 꺼려한다. 하지만 열심히 발품을 팔아가며 가격비교를 하지 않을 경우 자칫 호된 바가지를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장례비 비교사이트 파팅닷컴(parting.com)은 뉴욕시의 경우 ‘직접 화장’ 경비는 최소 550달러에서 최고 1만125달러 사이로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장례비용이야말로 가격샤핑이 필요한 이유다.
‘직접 화장’은 ‘즉시 화장’이라고도 하며 시신을 태운 후 유족들에게 분골을 전달하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끝난다. 뷰잉을 비롯한 장의예식은 완전히 생략된다.
감정적 충동에 의해 움직이는 소소한 구매행위는 오랜 시간을 두고 거듭되면서 예산에 상당한 흠집을 내게 된다.
매년 친자녀와 친부모는 물론 형제자매와 조카들의 생일까지 빠짐없이 챙기며 60년을 보낸다고 가정해보라.
맥그로는 “이 사람이 가족과 지인들의 생일에 퍼부은 돈은 수백달러가 아니라 수만달러에 달하게 된다”며 “바로 이것이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일상생활은 선택의 연속이다. 가까운 사람들의 생일을 챙겨주기로 한 것은 돈에 앞서 사랑을 택했다는 뜻이다.
여러 개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대안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포기해야 한다. 결국 선택된 하나의 비용은 포기한 다른 것에 대한 기회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선택의 비용을 ‘포기한 다른 선택에 대한 가치’로 측정하고, 이를 기회비용이라 부른다.
구매행위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종종 덫으로 기능한다.
소비자심리 전문가들은 어떤 물품을 구입하려 할 때 자신이 돈보다 사랑을 우선시하려든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보이지 않는 덫을 피해 갈 수 있다 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자리 잡은 골든게이트 유니버시티의 마케팅심리학 명예교수이기도 한 맥그로는 “일단 어떤 물건에 지불하고자 하는 가격이 그 물건의 수령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다면 보다 건전한 구매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도 공부가 필요하다. 구입하려는 물품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면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지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해당 상품이나 용역의 공정한 시장가격을 알게 된다.
야로우는 “조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자기통제력이 강하다”며 “생각이 잘 정돈될수록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맥그로는 “지원그룹의 조언을 듣거나 감정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성향의 인물을 대리인으로 활용하는 것도 감정구매를 피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택한 대리인은 결혼식장 대여라든지 장례식과 관련된 결정을 내리는데 큰 도움을 제공한다.
야로우는 “어떤 경우에건 즉석에서 결정을 내리라는 업주의 압박에 굴복해선 안된다”고 조언했다.
설사 장례식 준비 등 촉박한 시간에 쫒기는 이벤트라 해도 단 몇 분간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상당한 힘이 된다.
야로우는 “잠시 시간을 내서 지인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의논을 하면 혼자 일 때보다 훨씬 현명한 구매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품이나 용역을 판매하는 셀러들은 “지금 아니면 다시는 이처럼 좋은 조건에 거래를 할 수 없다”며 심리전을 펼치기 일쑤지만 여기에 흔들려선 안 된다. 야로의 말대로 단 하루만 지속되는 딜(deal: 호조건의 거래)은 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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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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