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연초 독일의 스피겔지가 내린 진단이었던가. 그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그러자 이코노미스트지 산하 연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경고음을 발했다.
‘지하디스트 테러리즘,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갈등 등과 함께 트럼프 정권탄생은 세계가 맞이할 탑 10 리스크의 하나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 마디로 난리다. 유럽에서 라틴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지난주 미니 수퍼 화요일에서의 승리와 함께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지명전의 8부 능선을 넘자 전 세계는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어떻게든 저지되어야한다’- 워싱턴포스트지의 사설이다.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말도 안 되는 공약을 남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트럼프는 저지되어야한다는 것이 이 신문의 논조로, 그 행간 행간에서 절박감이 묻어난다.
민주주의가 뒷걸음을 치고 있다. 퍽 오래 전부터 들려온 소리다. 그 경고가 그런데 남의 일로만 들렸었다. 내란에 휘말린 아랍국가들, 중국, 러시아 등 먼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데 트럼프현상 대두와 함께 그 소리가 달리 들리는 것이다. 아주 가까이서, 또 절박하게.
미국 민주주의가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는 EIU이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에서도 감지된다. EIU는 민주주의 지수에 따라 각국의 정권형태를 ‘완전한 민주주의’, ‘미흡한 민주주의’,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혼합형’, ‘권위주의’ 등 4가지 그룹으로 분류한다.
미국은 최상위 그룹인 ‘완전한 민주주의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 점수가 해마다 깎여 2015년 에는 20위를 마크, 가까스로 최상위 그룹에 턱걸이를 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에서도 목도되는 현상이다.
포퓰리스트가 설쳐댄다. 나토에서도, 유럽연합(EU)에서도 탈퇴해야 된다. 이런 주장과 함께 극우파인 마린 르펜의 국민전선(FN)이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프랑스가 그 경우다. 그 프랑스는 아예 ‘미흡한 민주주의’로 분류되고 말았다.
포퓰리즘이 극성을 떨면서 극우 아니면, 극좌파가 설쳐댄다. 유럽이 보이고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전통적인 민주주의나라에서도 민주주의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민주주의의 뒷걸음은 일종의 ‘세계적 현상’으로까지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 정황에서 또 다른 한탄이 나오고 있다. 서방세계는 종언을 맞았다는 것이다. 무엇이 서방을 하나로 묶고 있나.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보편적 가치관이다. 그 가치관을 바탕으로 나토가 설립되고 EU가 탄생했다. 그 가치관은 전후 평화시대를 연 초석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트루먼에서, 존슨, 닉슨… 그리고 클린턴, 부시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역대 미대통령들과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할 경우에. 서방세계는 그래서 그 존립의 이유마저 잃게 된다는 우려가 일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오고 있나. 대불황(the Great Recession)이 지적된다. 테러리즘, 권위주의 형 독재체제의 반격도 한 이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신뢰상실, 그에 따른 정체성(正體性) 혼란이 그 주원인으로 지적된다.
새삼 정체성 논란이 뜨겁다. 대한민국에서. 그러니까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 위원장은 당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은 대가를 지불하게 할 것이라는 선언과 함께 ‘진실 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학살을 감행했다.
그 당의 정체성이란 건 무엇일까.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와 ‘그들’도 아니다. 오직 ‘나’와 ‘너’로 구분된다. ‘너’는 다름 아닌 ‘나’를 따르지 않는 존재다. 그 ‘너’란 범주가 그렇다. 김정은 집단은 말할 것 없다. 용공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정치 스펙트럼에서 반대방향에 서 있다. 그들도 ‘너’다. 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에, 시장경제를 추구한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가치관을 공유한다. 그런데 의견이 다소 다르다. 그 경우도 ‘너’의 범주에 들어간다. 같은 보수다 그렇지만 ‘나’를 거스른다. 그런 사람은 모두가 ‘너’인 것이다.
당의 정체성이란 것은 그러니까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헌법을 지키는 것도 아니다. 당헌에 충성하는 것도 아니다. 항상 ‘나’의 위치에 있는 대통령의 의중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다. 그게 새누리당의 정체성인 모양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맞섰다. 아니 그저 의견을 달리했을 뿐이다. 그런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의견을 달리한 사람을 ‘진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내몰고 칼을 휘둘러 댄 것이 새누리당의 공천인 것으로 결과적으로 판명돼 하는 말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대한민국을 자칫 위기로 몰아넣을 최대 리스크는 무엇일까. 김정은과 그 일당의 도발. 맞는 지적이다. 오직 ‘나’만을 고집하는 대통령과 맹종하는 정치인 집단. 그들도 그 최대 리스크 리스트에 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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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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