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이름이 낯선 한통의 편지가 내 앞으로 배달이 되었다. 누구일까 하며 편지를 뜯어 보았더니 어느 독자분의 편지였다. 그분은 자신을 88세의 독자인데 1953년, 6.25가 끝나던 무렵 미국으로 유학을 온 사람이라며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언제인가 부터 내 독자가 되었는데 한동안 내 글이 신문에 실리지 않으면 아픈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하며 궁금해하고, 또 기다리는 숨은 친구요 독자라며 내 글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나는 그분의 편지를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나 역시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 요즘 이 바쁜 생활에 현대인이 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모두들 한통의 전화나 이메일이나 카카오톡이라는 것을 하면서 편지 따위는 뒷전으로 물러난 지 오래다.
옛날 내가 젊었을 때는 전화가 있는 집도 드물어서 보통 소식을 편지로 왕래를 했던 시절이었다. 매일 매일 사랑하던 사람의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런 순수한 마음을 요즘 사람들은 촌스럽다고 할지도 모른다. 잠이 오지 않던 긴긴 겨울밤에 밤을 새워 편지를 쓰던 그때의 소녀들도 이젠 모두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되었다. 시간은 가고 세월은 흘러서 우리네 인생도 어느듯 겨울의 문턱에 와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연적이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지만 어느 때는 나자신 후닥닥 놀라고 만다.
언제 내가 칠십이 되었고 언제 내가 팔순, 아니 구십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 한때는 어디를 가나 제일 젊었을 때가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제일 늙은 사람이 되어 뒷자리에 밀려 앉아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잠깐씩 망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 엄마가, 할머니가 옛날 한때는 잘 나가던 소녀였고, 사랑에도 빠졌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깔깔대고 웃던 철부지 소녀였다는 것을 잊고 살고 있다.
나는 그분의 삶을 한번 상상해 보았다. 1953년에 미국에 유학을 올 정도면 분명 그분의 가정은 특별하고 부유했을 것이다. 6.25 전쟁이 막 끝난 해, 그때 우리 한국인들의 GNP는 일인당 백불이 채 안되던 시절이다. 나라 전체는 곳곳에 전쟁의 상흔으로 피폐해서 거의 다 국민들은 가난하고 무지했을 때였다.
그 시절 나는 아직 중학생이어서 부평에서 인천까지 기차로 통학을 하던 시절이다. 우리 과수원이 있던 읍내는 부평역에서 십리를 더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버스가 끊긴 날은 혼자 터벅터벅 그 십리길을 걸어야 했다. 여름엔 그런대로 견딜만 했지만 추운 겨울엔 발을 동동거리며 거의 뜀박질로 달려가야 했다.
가끔 미군 차들이 옆에 와서 급정거를 하며 ‘핲인!’ 하고 타라는 시늉을 하면 겁도 없이 그 차를 얻어타고, 집에와서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는 대경실색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 덩치 큰 흑인들이 어디 으슥한데로 끌고가서 행패를 하면 어쩔 것이냐고 막 야단을 치셨다. 지금도 한국인들은 누구보다 인종차별이 심한데 그 시절엔 무조건 흑인들은 나쁜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다. 6.25 전쟁이 나서 미군이나 유엔군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 양코배기(그때는 그렇게 불렀다)들을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보게 되었어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에겐 이방인들이었다. 심지어 지금도 우리가 미국에 와서 산 지 수십년이 지났어도 아직 멕시코계 의사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믿지 못하고 경계한다.
"그 여자 있잖아. 양놈하고 사는 그 여자말야"사람들은 뒷전에서 이런 말을 태연히 하는 것을 나도 몇번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모두 교양인이라고 자처하는데 문제는 있다. 내가 대학을 나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과거에 뭐했던 여자였을까 하고 꽤 입방아에 오르내렸을 것이다.
내게 편지를 보낸 그분은 나중에 알고 보니 시조를 쓰시는 분이었다.얼핏 신문에 소개되었던 것을 어렴풋이 나도 기억하게 되었다. 나이가 팔십이 넘어 시조를 쓰게 되었다고 해서 나도 속으로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내 주변에도 가끔 그런 분들이 있다. 결과야 어떻든 늘 도전을 한다. 조그만 나무 잎새, 꽃 한송이에도 감탄을 하고 그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작은 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가치를 찾는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잘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지금 우리들에겐 내일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오늘을 잘 살아야한다.
오는 6월에 먼 스칸디나비아로 쿠르스 여행을 잡았다. 꼭 한번 가고 싶었던 곳이기에 용기를 내서 가기로 했다. 사실 경비도 만만찮아서 주저도 했지만 아마 이번 여행이 남편과 나의 마지막 긴 여행이 될 것이다. 주변의 좋은 친구 몇명과 함께 가기로 한 여행이기에 더욱 기대가 되고 설레인다. 인생은 결국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가는 하나의 긴 여행이 아닌가. 이 여행이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멋진 추억을 선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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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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