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증조부는 안동의 선비였다. 집안에는 그림이며 글씨, 도자기들이 꽤 있었다는데 오래 전에 다 버려졌다. 며느리들이 최신 플래스틱 제품, 양은 제품에 마음이 끌려서 ‘고물들’을 모두 내어주었다고 했다. 언젠가 외할머니가 섭섭해 하며 말씀하셨다.
바둑 두는 인공지능 알파고의 승리를 보면서 안동 외가에 있었을 골동품들을 떠올렸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1960년대 한국에 도착했다. 공장들이 세워지고 대량생산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반듯하게 규격화하고 반짝반짝한 최신상품들은 선진국의 냄새를 풍겼다. 장인들이 만든 수제품들은 구식 물건으로 천대받으며 밀려났다.
인간의 손으로 빚어진 것의 가치에 한국사회가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30년쯤 후였을 것이다. 90년대가 되자 폐가에 뒹굴던 소쿠리도 막사발도 골동품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인간의 가장 큰 가치는 인간스러움이다. 인간으로서 같은 걸 느끼고 같은 것에 감동 받는 상호교감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흠하나 없이 완벽한 공장제품보다 창작의 고뇌가 담긴 사람의 작품이 가슴에 와 닿는 이유이다. 알파고의 완벽한 바둑보다 이세돌의 바둑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이다.
세계 최고의 바둑 고수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두 번 연속 패하자 반응이 요란하다. 이세돌 편, 즉 인간 편인 한국에서는 충격과 탄식이 주를 이룬다. ‘인류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무너뜨렸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해야’ ‘인공지능 곧 인간 대체’ 등이다. 반면 알파고의 알고리즘을 만들어낸 구글의 딥마인드 팀은 이번 승리를 “인간이 달에 착륙한 사건”에 비교하며 기뻐한다.
알파고는 이전의 인공지능 스타들과는 급이 다르다고 한다. 1997년 체스 세계챔피언을 꺾은 딥블루, 2011년 퀴즈쇼 제퍼디에서 완승한 왓슨 등 IBM 컴퓨터들에는 게임규칙들이 프로그램 되었었다. 반면 알파고는 ‘이겨야 한다’는 목표만 입력되었을 뿐 나머지는 기계가 다 알아서 했다. 기계가 스스로 강화학습을 통해 수많은 시도를 하며 게임 규칙들을 익히고 인지하며 추론해서 오늘의 바둑 고수가 되었다고 한다.
알파고의 특징은 이 자율적 ‘학습능력’이다. 알고리즘 개발팀을 흥분하게 하고, 일반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체도 바로 그 능력이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배우며 발전하다 보면 인류를 위협하는 프랑켄슈타인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지 않을 까하는 두려움이다.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아직은 요원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능력에서 컴퓨터가 사람보다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는 것보다 구글이 훨씬 빨리 많은 자료들을 찾아낸다고 인간으로서 패배감을 느낀다면 우습다. 인간의 작업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기계가 아닌가. 바둑에서의 인공지능 승리도 언젠가는 일어날 일, 예상보다 빨리 닥쳤을 뿐이다.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주변에 많이 포진해있다. 셀폰의 음성인식 기능, 페이스북의 이미지 분류 기능, 자동차의 내비게이션 등이 모두 인공지능 기술들이다. 구글의 자율주행차를 운전하고, AP 등 언론사에서 기사를 쓰며,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시회에 추상화를 그려내고, 증권사에서 투자 조언을 하며, 온갖 판례를 분석해 법률 조언을 하고, 음악을 작곡하는 등 인공지능의 진출 분야는 날로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제기되는 현실적 위협은 일자리 문제이다.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 사무 관리직, 경기심판이나 법무사, 텔레마케터, 택시기사 등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직업 1순위로 꼽힌다.
21세기는 인공지능 즉 기계와 함께 사는 시대이다. 기계로 인해 우리 생활은 점점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인간이 바뀌지는 않는다. 인간은 인간스러움으로 살아간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기계일뿐, 바둑이 무엇인지 모르며 바둑을 두고, 그림이 무엇인지 모르며 그림을 그린다. 그 안에 교감이나 감동이 있을 수가 없다. 피 말리는 긴장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한수 한수 두는 사람의 바둑이니 그 경지가 아름답고, 창작의 기쁨과 고통 속에 피와 땀으로 그린 작품이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알파고의 승리는 과학기술의 발달로만 이해되었으면 한다.
앞으로 어떤 인공지능이 개발되느냐, 즉 사람이 어떤 알고리즘으로 인공지능을 작동시키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는 결정된다.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탄 프로젝트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폭탄이 인류에 미칠 영향을 당시 과학자들이 미리 생각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나는 이제 죽음의 사자,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는 말을 남겼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이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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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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