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6일- 무슨 날인가. 도널드 트럼프가 출마를 선언한 날이다. 그리고 2016년 3월1일, 그러니까 그 때부터 259일이 지난 현재 공화당은 대란(大亂)의 상황에 빠져들었다.
네오콘으로 분류되는 우파 인사들이 연명의 공개서한을 통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주류 언론마다 트럼프를 파문하라는 성화가 빗발치고 있다.
“히스패닉은 마약을 가지고 온다. 강간범들이다.” “이슬람들이 미국에 들어오는 것을 전면 봉쇄해야한다.” “사람의 목을 자르는 데 비하면 고문쯤이야…” 트럼프의 어록을 빛낸(?) 말들이다. 그것도 모자라 공적 공간에서 육두문자도 서슴지 않는다. 그 트럼프가 수퍼 화요일에 압승을 거두었다. 공화당 대통령후보지명의 7부 능선을 넘어 선 것. 그러자 닥쳐온 후폭풍이다. ‘공화당은 미쳤다’는 탄식이 넘치는 가운데.
‘공화당이 미쳤다’- 다른 말로하면 ‘트럼프현상’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이게 가능하게 된 것인가.
“왜냐하면 그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다르니까.” 미국의 민초(民草)들이 내놓은 답들이다. “TV 리얼리티 쇼는 미국의 시대정신으로, 그 쇼의 포로가 된 게 미국의 유권자들이기 때문이다.” 한 미디어 비평가의 지적이다. 집단성 분노조절 장애 증세를 보이고 있다. 누가.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미국의 백인 유권 층 말이다. 트럼프현상을 해독하는 키워드는 바로 분노에 있다는 또 다른 진단이다.
그 증세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08년께부터다. 경제가 뒤집어졌다. 최악의 상황은 지나갔지만 호전될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가 테러위험이 높아가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미국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쌓여간다. 그 불신은 분노로 이어지면서 기성정치권이 몰매를 맞는다. 그로 그치는 게 아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과실을 먹으며 성장했다. 그런데 도무지 고마워할 줄 모른다. 누가. 유럽이, 한국이, 일본이. 중국은 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 와중에 희생만 강요당한 것은 미국의 중산층이다. 일자리가 없어지는 등. 그러니 분노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언덕위의 빛의 도성’(a shining city on a hill)- 자유와 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보급해야한다. 그렇게 운명 지어진 게 미국이고 미국은 그 본보기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열기까지 해외정책에 있어 금과옥조로 지켜온 표어이자 가치관이다.
그 아메리카의 책무까지 허튼 소리로 들린다. 분노한 미국의 중산층에게는. 그 정서를 파고 들었다. 분노에 불을 지르고 증오감을 극대화 시키는 거다. 그 트럼프의 언동에 꽤나 많은 미국의 유권 층이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시빌리티(civility)는 이제 사치가 되고 만 것이다.
‘포스트 게이 매리지(Post Gay Marriage)시대에 치러지는 첫 대통령선거라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왜 트럼프 현상인가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이다.
미국은 기독교 전통의 나라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케네디를 제외하고 모두가 개신교 주류교단 신자들이다. 미국의 대학들도 초기에는 대부분이 개신교를 배경으로 설립됐다. 4세기에 걸쳐 미국의 정치와 사회를 지배해온 것은 기독교 가치관으로 기독교, 특히 개신교 주류교단은 미국의 시민종교(civic religion)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그 개신교 주류교단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60년대로 당시만 해도 미국의 기독교인 6명 중 1명은 주류교단 소속이었다. 오늘날에는 16명에 한 명도 안 된다. 미국의 최후의 양심으로 불리는 연방대법관 중에는 단 한명의 주류교단 신자도 없는 것이 미국 기독교의 현 주소다.
그 정황에서 기독교는 가치관을 둘러싼 문화전쟁에서 잇단 패배를 당했다. 결정적 패배는 연방대법원의 동성애자 결혼허용 판결이다. 기독교는 주류의 위치에서 혹시 소송이나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입장으로 전락한 것이다.
“기독교 주류교단의 붕괴는 도덕적 진공사태를 불러왔다.” 뉴스위크지의 지적이다. 세 번이나 결혼을 했다. 게다가 현재 부인은 젊은 시절 누드모델을 지냈다. 개신교 주류교단이 제 자리에 서 있었을 때에는 이런 인물이 미국대통령에 도전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민주당 샌더스의 부상도 트럼프현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닐까’-이어지는 분석이다. 유대계에 무종교인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돌풍을 몰아오고 있나. 밀레니엄세대, 그 중에서도 무종교로 자처하는 젊은 세대인구 급증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탄생은 가능할까. ‘아직은… ’이라는 게 다수의 관측이다. 지지자가 많다. 못지않게 많은 게 혐오자다. 그런 인물이 백악관에 입성한 경우가 없어서다. 그러나 트럼프현상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포스트 게이 매리지 시대에 치러지는 첫 대통령선거가 이렇듯 이상기류에 휩싸여 있다. 2020년, 2028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것이 스펙테이터지의 논평이다. “차라리 캐나다로 이민을 가야겠다.”- 그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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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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