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했을 즈음 집으로 배달된 신문을 보며 의아해 하곤 했다. 신문에 극장광고들이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동네 극장은 안 나왔다. 매일 지나가며 영화간판을 보곤하는 그 극장은 왜 신문에 나오지 않는 건지 어린 마음에 궁금했다. 광고를 낼 만큼 규모가 큰 극장, 소위 일류극장만 신문에 나온다는 걸 어느 순간 알게 되었나보다. 언제부터인가 궁금하지 않았다.
현실에는 분명하게 존재하는 데 존재하지 않는 듯 취급받는 경우, 혹은 그런 존재들이 있다. 신문광고라는 여과장치를 거치며 변두리 우리 동네 극장은 우리에게만 존재할 뿐 다른 데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있기는 있어도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28일의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둘러싸고 흑인을 비롯한 소수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2015년, 2016년 두해 연속으로 아카데미 남녀 주연^조연상 후보가 모두 백인이기 때문이다. 소수인종 후보 하나 없이 완벽하게 새하얀것은 아카데미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성향 탓이라며 흑인 영화인들이 불참을 선언했다. 흑인여성 셰릴 분 아이잭스가 회장인 아카데미는 서둘러 진화작업에 나서며 2020년까지 흑인, 여성등 소수계 회원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아카데미만 탓할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백인 일색’이 아카데미만의 문제가 아니라 더 깊은데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양계장이 오염돼 닭들이 병들었을 경우, 병든 닭만 버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백인들만 사는 동네에서 백인 자녀만 태어난다고 문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카데미 수상 후보들이 백인 일색인 것은 할리웃 즉 영화계가 백인 일색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USC의 커뮤니케이션 & 저널리즘 대학 연구진이 할리웃의 다양성 문제를 분석했다.
오스카 시상식을 며칠 앞두고 발표된 보고서에 의하면 할리웃은 ‘백인남성 클럽’이다. 여성이나 소수인종이 발을 들이기에는 너무도 폐쇄적인 ‘그들만의 세상’이다. 2014년 9월~ 2015년 8월까지 1년간 방영된 영화^TV드라마 414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우선 감독의 87%가 백인이다. 성별로는 85%가 남성. 여성 감독은 15%인데, 메이저 영화사 제작 100여편 영화에서 여성 감독은 3.4%에 불과하다. 거의 없는 셈이다.
감독이 백인이면 이들이 영화를 통해 하려는 이야기도 백인 시각, 백인 취향이 되기 마련이다. 자연히 카메라 앞에 세우는 배우도 백인이 많아진다. 전체 작품에서 대사가 한마디라도 있는 배역 중 소수계에게 돌아간 것은 28%에 불과하다.
아시안은 그중에서도 희귀종이다. 영화·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봐도 아시안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작품이 절반에 달한다. 우리는 분명 존재하는 데 영화나 TV 스크린의 틀에서 보면 우리는 없는 존재들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백인 대비 소수계에게 주어지는 배역이 절대적으로 적으니 연기상 후보가 백인일 가능성은 높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아카데미 회원들 대다수가 백인남성이니 백인 입맛에 맞는 작품, 배우들이 선정될 가능성은 더더욱 높아진다. 우리와는 먼, 그들만의 세상에서 오스카 주연, 조연 배우는 만들어진다.
내가 어렸을 적 동네 극장의 존재감에 의아해했다면 이민 2세인 딸은 아시안의 존재감에 의아했을 것이다. TV나 영화에 우리 같은 아시안은 왜 나오지않는 걸까 어린 마음에 궁금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은 백인이 지배하는 나라, 세상은 그들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우리 2세들은 성장기 어느 지점에서 아프게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스크린의 백인 점령을 더 이상 의아해 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스크린은 단순하지 않다. 현실세계 못지않게 강력한 현실이다. 스크린이 전달하는 가치가 이 사회의 가치를 지배하곤 한다. 외모에 민감해지는 나이가 되면서 한인 소녀들이 외모콤플렉스를 겪는 배경이다. 백설공주,신데렐라, 미녀와 야수를 보며 자라는 동안 아름다움과 흰색은 동의어로 주입되기 때문이다.
30대의 한 2세여성은 말한다. “어려서 매일 저녁 꿈을 꾸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내가 파란 눈의 백인이 되어있는 꿈이지요.” 새하얀 할리웃이 성장기 우리 아이들에게 주는 상처는 생각보다 깊다.
사람이 주연, 조연, 엑스트라로 나뉘는 것은 영화에서만이 아니다. 때로 인종차별이, 때로 성차별이 평등해야 할 사람들을 가른다. ‘너무 하얀 오스카’에 대한 불만은 잘 터졌다.
‘ 너무 하얀’모든 곳에 색깔을 더하는 싸움이 필요하다. 세상은 여러 색깔이 어우러질 때 자연스럽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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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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