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사랑으로 빈민들 돌보는일에 평생을 바친 ‘빈자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가 1997년 선종하고 10년이되었을 때였다. 서거 10주년 기념 책자가 발간되면서‘ 20세기의 성녀’로 추앙받았던 그의 감춰진 모습이 드러났다.
세상에서 가장 굳건한 믿음의 본보기로 여겨졌던 테레사 수녀가 사실은 엄청난 신앙적 갈등 속에 일생을 보냈다는 사실이었다.
책은 테레사 수녀가 수십 년간 신부들에게 고해성사 겸 보낸 편지들을 소개했다. 사람들이 바라만 보고도 평안을 얻었던 그의 온화한 미소 뒤에서 그 자신은신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해 회의하고 고뇌하는 내용들이었다‘. 성인’의 이런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이었다.
이번 주에는 20세기가 낳은 또 다른성인, 요한 바오로 2세가 화제가 되고있다. 지난 2005년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아주 각별한 여성 친구가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교황이 30여년에 걸쳐 그 여성에게 보낸 편지들을BBC가 입수해 공개하면서 교황 생애의한 줄기 중요한 개인사가 드러났다.
편지 어디를 봐도 교황이 가톨릭 사제로서의 순결 서약을 어겼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상대는 결혼한 여성이었고 편지들에는 두 사람의 감정을 단순한 우정으로 보기 어려운 절실함, 서늘하지만 절절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교황의 낯선 모습이 공개되면서 사람에 따라서는 충격을 받기도 하고 호기심을 갖기도 한다.
가톨릭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교황은 남녀노소, 직업 귀천 가리지 않고 폭넓은 교분을 가졌었다. 그중에는 여성들도 다수 있었다.”며 특별한무게를 두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반면지난 2014년 교황을 선종 9년 만에 성인으로 추대한 결정과 관련, 시성을 너무 서두른 게 아니었는지 의구심을 표하는 반응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교황 생애에 특별한 인연이 끼어든것은 1973년이었다. 뉴잉글랜드의 철학자, 애나-테레사 티미에니에츠카가 폴란드의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 즉 교황 되기 이전의 그를 찾아가 그의 저서를 영문으로 번역하고 싶다고 한 것이 계기였다. 여성은 폴란드에서 태어나 나치 치하의 혹독한 시절을 겪은 후 미국으로건너간 이민 1세였다. 50대 초반의 동년배였던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아내고 같은 언어를 쓰는 동족으로서 쉽게가까워졌던 것 같다. 보이티와는 스키여행, 그룹캠핑 등에 여성을 초대했고, 미국 방문 시에는 여성의 집에서 그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 처음 공적이던 편지는 점점 사적으로 변했다.
만난 지 한두 해쯤 지나 여성이 고백을 했던 것 같고 보이티와는 둘 사이의감정을 신앙의 틀 안에서 정당화하기위해 고심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었다. 그는 여성을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썼고 “나는 당신의 사람”이라며 정표를 보냈다.
교분은 그가 교황이 된 후에도 이어져84세로 선종하면서 막을 내렸다. 교황이 임종하기 전날 밤 여성은 81세 노구로 그의 침상을 지켰다고 한다.
두 사람의 관계의 성격을 정확히 알수는 없다. 깊은 사랑을 토대로 한 정신적 동반자 관계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교황을 잘 아는 한 폴란드 사제는두 사람의 관계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철학적 이슈들을 두고 편하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지적 파트너였다고 말했다.
테레사 수녀의 회의,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랑이 이들 위대한 종교적 지도자에게 흠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몸 안에 따뜻한 피가 흐르고 오감이 살아 움직이는 인간으로서 때로 회의로, 때로 사랑으로 흔들리고 번민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같다. 그런 회의를, 사랑을, 번민을 ‘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차이를 만들어 낸다.
테레사 수녀는 수십년 이어진 길고도 깊은 회의에 굴복하지 않았다. 맹목적 믿음으로 자신을 세뇌하는 대신 회의에 정직하게 맞서면서 신의 존재를느끼려 기도하고 간구했다. 그런 고뇌속에서도 자신을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어줌으로써 신에게 다가가는노력을 멈추지 않은 것이 보통사람들과구별되는 점, 그의 위대함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은총처럼 찾아온사랑에 눈감지 않았고, 눈멀지도 않았다. 가톨릭의 규율을 따르고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존중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진화했던 것 같다. 여성은 이혼하지 않았고 교분은 평생을 이어졌다. 교황을 떠나보내고 3년 후 여성은하버드 경제학자였던 남편을 사별하고2014년 그 자신도 세상을 떠났다. 모두고인이 되었다.
성인들의 인간적 모습은 우리에게위안이 된다. 반면 그들이 인간의 조건에 굴복하지 않고 넘어서는 모습은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하느님의 종으로서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신실한 모습에서 우리는 삶의 지침을 얻을 수가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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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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