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행 버스를 타고 40년 동안 못 만나 본 친구를 만나러 떠났다.
어른도 아니고 어린 시절도 아닌 십대의 후반, 삶에 대한 기대와 감정이 강렬하던 때 신촌 로터리 부근에서 방을 빌려 그룹사운드라는 록 음악 훈련을 받으며 서로 우정과 신뢰를 쌓았던 친구였다.
방과 후 연습하는 강훈련 속에 한밤중 집에 들어갈 때는 사이다 한 병으로갈증을 달랬던 정열이 넘치었던 시절이었다. 성품이 온화하고 재능과 실력이출중했던 그는 직업적인 록밴드를 조직하여,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때 함께 했던 윤형주씨는 한국에서 이름을 알렸고 재능과 실력이 뒤지는 나는 후회 없이 의사의 길을 걸었다.
미국 연예계를 노크 했던 그가 그 벽이 너무 높고, 두터운 것을 실감하는데는 일 년도 안 걸렸다고 했다. 뜬 구름 같은 연예계 생활을 접고 전공했던미술을 살려 시카고의 큰 회사에서 의상 디자이너로 새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부인이 시카고에서 전화를 한것은 지난 연말이었다. 선천성 정신 및신체 발달장애인 24세 딸의 간호를 위해 직장을 접고 24시간 돌보고 있는 남편을 볼 때마다 너무 안쓰러워 몰래 위로 여행을 계획했다고 했다. 부인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했으나 안쓰럽기는 그 가족 모두이니 서로 배려하는 착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요즈음은 더 자주“ 형이 보고싶다” (두 살 차이로 친구지만 나를 형이라 부른다)는 말을 한다고 했다. 라디오에서 옛 팝송을 들을 때는 공유했던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바쁜 줄 알지만 이틀만이라도 남편과 함께 어울려 주면 고맙겠다”는 간곡한 부탁을 나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사람이 힘들 때는 어머니가 그립고, 허무할 때는 하늘을 쳐다보게 되고, 울고싶을 때는 친구가 그립다고 한다. 울고싶은 심정이리라, 헤아렸다. 주위에서그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뼈저린 슬픔과 수고, 희생을 보고 있는 의사로서그의 24년간의 수고와 아픔을 친구로서 위로해 주고 싶었다.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즐겁지않는가?” 하는 옛 말도 있다. 40년의 긴시간과 다른 공간속에서 서로 많이 변했겠지만 우리에게는 변하지 않은 공통분모가 있다. 음악이다. LA 보다는 음악이 있는 라스베가스를 재회장소로정하고 비행기로 날아온 그와 버스를타고 달려간 나는 금요일에 만났다.
이틀 동안 저녁에는 4개의 아날로그시절의 팝 뮤직 콘서트, 낮에는 가수지미 버펫의 마가리타빌 식당, 하드록호텔 방문…일정을 소화하기에는 시간이 벅찼다. 그러나 도박과 죄악의 도시가 우리에겐 추억을 부활하는 재충전의 도시로 변하고 있었다.
낮에는 마가리타를 앞에 놓고 허심탄회하게 좌절, 실망, 슬픔의 세월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새로 얻은 당뇨병과늙음을 실감하는 요즈음에는 딸이 혼자되면 누가 돌보아줄까? 이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민다고 말하는 그의 눈시울에 물기가 고인다. 아니, 슬픔이 고인다. 그러나 옛 팝송 콘서트에 가서는 젊은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나는지 얼굴에생기가 넘쳐흘렀다. 하드록 호텔에 전시된 유명 록 기타리스트들의 기타 20-30개를 관람할 때 그의 눈은 옛날처럼 반짝반짝 빛나기도 했다.
우린 끊임없이 음악을 들으며 끊임없이 삶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이젠 왜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생각은 안 한다고 했다“. 누군가 말했지, 인생은 좋은 일과 나쁜 일, 기쁨과슬픔, 행복과 불행이라는 삶에 의하여 짜여 진 한 조각 옷감에 불과하다고…” 일요일 아침 헤어지면서 이번 여행의 목적은옛 음악을 통해 젊음의 정열을 되새기며그 기쁨으로 재충전되어 앞으로 또 다른24년의 수고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것이라고 우린 다짐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계속 뿌리는 빗줄기와 뽀얀 유리창을 내다보며 그의 삶을 생각하던 나는 깊은 상념에 젖었다. 슬픔과 좌절이 우리 삶을 바위 덩어리 무게로 짓누른다 해도 그것을 견디고 무사히 들어올리기만 한다면, 그 밑에는 반드시 눈부시게 찬란한 빛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끊임없이 베푸는 순수한 사랑으로 생기는 가슴 깊은 곳의 찬란한 빛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내게 그 같은 사랑으로 잉태된 아름다운 빛과 따뜻한 향기를 남기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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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청원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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