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성희 씨가 쓴 재미있는 시가 있다. 제목은 ‘부부’. 시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있었을 법한 일이다.
“낱말을 설명해 맞추는 TV 노인 프로그램에서/ 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 보이며/ “아니 네 글자”/ “평생 웬수” … ”
이 광경을 보고 가장 많이 웃었을 그룹은 중년여성들일 것이다. 결혼생활 30년쯤 되고 나이 60쯤 되면 ‘천생연분’과 ‘평생 웬수’의 미묘한 상관관계를 안다.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 키우고 교육시키느라 아등바등 살아가는 동안, 생각 다르고 성격 다른 두 사람이 수없이 부딪치고 삐걱거리며 당장이라도 갈라설 듯 갈라설 듯 이어온 세월 동안, 젊은 날의 뜨거웠던 열정과 사랑, 그만큼 날카로웠던 미움과 분노는 곰삭고 발효된다. 남은 것은 밋밋하고 뭉근한 정. “웬수도 저런 웬수가 없다” 싶다가도 늙어 기력 쇠한 모습을 보면 가슴 찡하게 안쓰러운 ‘천생연분’이다.
그렇게 세월은 또 흐르고, 어느 날 남편은 떠나고 아내는 홀로 남는다. 시는 끝을 맺는다. “사무치게 그리운 /평생의 웬수”
1인 가구가 한 추세가 되고 있다. 미국의 인구학자들은 ‘베이비 붐’ 이후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1인 가구’ 증가를 꼽는다. 2012년 기준, 미국에서 혼자 사는 사람은 3.100만명. 성인 7명 중 한명이 혼자 살고, 전체 가구 중 28%가 나홀로 가정이다. 젊은 층은 결혼을 미루거나 안 해서 혼자 살고, 노년층은 기대수명이 길어져서 배우자 사별 후 혼자 사는 인구가 많아지고 있다.
1인 가구가 많아지기는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4가구 중 하나가 1인 가구로 미혼의 젊은 층과 사별한 노년층이 대부분이다. 핵가족으로 살다가 자녀들 출가하고 부부 중 한명이 사망하면 1인 가구가 되는 것인데 대개 남는 사람은 여성이다. 미국의 경우 배우자와 사별하는 비율은 여성이 남성의 5배가 된다.
1인 가구 시대가 되면서 커진 것이 사별 후의 고독이다.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가족 시대에는 배우자와 사별해도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함께 사는 가족구도가 충격흡수 쿠션 역할을 했다. 혼자 사는 지금은 사별의 슬픔도 고통도 근본적으로 혼자 삭여내야 한다.
며칠 전 한 지인을 만났다. 70즈음의 이 분은 활달한 성격의 능력있는 사업가이다. 하지만 남편과 사별한지 거의 5년이 되도록 슬픔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40여년 함께 산 이 부부는 유난히 모든 일에 ‘부부동반’이었다. 남편과 같이 하던 일을 혼자서 하려면, 부부가 같이 가던 모임에 혼자서 가려면, 혼자라는 사실이 비수처럼 가슴을 찌르는 모양이다. ‘혼자라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고 했다.
안동의 시인 한미영의 시 중에 ‘밀가루 반죽’이 있다. 밀가루와 물이라는 전혀 다른 재료를 오래도록 치대고 주무르면 완벽하게 한몸이 되면서 말랑말랑한 반죽이 되는 과정을 묘사했다. 시를 읽으며 ‘부부’를 떠올렸다. 부부는 ‘밀가루 반죽’ 과 같은 존재이다. “처음 역하던 생내와/ 좀체 수그러들지 않던 빳빳한 오기도/ 하염없이 시간에 팍팍 치대” 는 과정이 결혼생활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몸이 되는 것이 부부이다. 그래서 ‘웬수. 웬수’ 하면서도 천생연분인데, 사별은 오랜 세월 치대놓은 ‘밀가루’와 ‘물’을 다시 분리시키는 충격. 때로는 심신이 기능을 못할 정도로 고통이 크다.
앞의 부인은 남편 떠나고 첫 1년 동안 매일 세 가지를 외우며 살았다고 한다. “숨 쉬자, 밥 먹자, 잠자자.” 숨도 쉴 수 없고 밥도 먹을 수 없으며 잠은 더 더욱 잘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텍사스에 사는 60대 후반의 지인 역시 사별의 고통을 심하게 겪고 있다. 평소 건강하던 남편이 2년 반 전 몸에 이상이 있다며 병원을 찾더니 그 길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충격은 2년쯤 지속되다가 가라앉았지만 아직도 어둑어둑해질 시간이면 슬픔이 몰려온다. ‘남편 없는 집’에서 관심을 밖으로 돌리는 방편으로 그는 의도적으로 여러 모임에 나가고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 삶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건강과 돈,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이다. ‘100세 시대’는 그만큼 혼자서 오래 살아야 한다는 말도 된다. 부부가 함께, 그리고 따로 삶을 즐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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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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