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선의 가닥을 잡을 첫 경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2월1일 아이오와 코커스, 2월9일 뉴햄프셔 예비선거를 시작으로 11월 본선까지 미국의 새 대통령을 뽑는 대장정이 펼쳐진다. 앞으로 10개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지금으로서는 감을 잡을수가 없다. 10개월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 지금 민주 공화 양당 경선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니 뉘라서 앞날을 예측하겠는가.
2016년 선거는 지루한 선거가 될 것으로 대부분 생각했다. 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은 힐러리 클린턴, 공화당은 젭부시가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 확실해보였다. 부시 가문과 클린턴 가문이 지난 20여년 돌아가며 백악관을 차지하는 데 대한 피로감이 지레 터져 나오기도 했다.
월등한 자금력, 탄탄한 조직, 엄청난 인맥, 타고난 능력과 경험 -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그들보다 확실한 후보감은 없었다. 그런데도 마른하늘에 벼락 치는 일이 생기듯, 이변이 일어났다.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 지지 바람이다.
트럼프가 지난 여름 출마선언을 했을 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10여명 난립한 공화당 경선에서 ‘광대’ 한명 있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은 정도였다. 그런 그가 선두주자 자리를 차지한 지 수개월이다. 힐러리 단독출마나 다름없던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는 양념 후보 정도로 여겨졌다. 소신있고 정직한 정치인이기는 하지만 극좌 성향인 그가 민주당 후보가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 그를 지지하는 열풍이 잦아들지를 않고 있다.
선거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 - 유권자들의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흔들때 이변은 일어난다.
2016년 대선 이변의 주인공, 트럼프와 샌더스는 많이 다르면서 같다. 전자가 정치라고는 동네반장도 안 해본 정치 문외한 억만장자라면 후자는 평생 정치만 해온 확고한 신념의 정치인, 전자가 자본주의 최대 수혜자인 소득 최상위 ‘1%’의 대표주자라면 후자는 못가진 99%를 대변하며 소득과 부의 불평등 해소에 앞장서는 사회주의자. 그런 반면 국민들의 가슴 밑바닥 좌절과 분노를 흔들어 깨우고, 거기에 불을 붙임으로써 풀뿌리 지지층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두 후보는 같다.
2월 예비선거를 앞두고 샌더스는 22일부터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 새 캠페인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제목은‘아메리카’ . 사이몬 & 가펑클의 같은제목 노래를 배경으로 아이오와의 농장, 뉴햄프셔의 해변이 펼쳐지고 활짝웃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모두들 미국을 찾아서 왔네(they’ ve all come tolook for America)” 라는 가사와 함께 거대한 군중이 샌더스에게 몰려들며 환호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들이 찾아온 미국은 자유와 평등과 기회의 나라,“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숨쉬기를 열망하는 무리들을” 모두품어 안는‘ 자유의 여신상’의 나라이다. 샌더스는 이런 미국을 만들자며 ‘희망과 변화’를 외친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평생의 주제는평등과 사회 정의. 경제적 불평등을 없애고, 모든 인종차별을 철폐하며, 동성애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을 갖고 무료로 대학교육을 받는 평등사회를 주창한다. 그의 민주사회주의 이상에 가장 열광하는 집단은 35세 미만의 밀레니엄 세대. 미국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항의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의 중심세력과 겹친다. 상위 1%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나머지 99%는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는현실에 분노하는 이들은 정치적 혁명으로 미국을 바로 잡자는 샌더스에 열광한다. 지지 열기가 가히 2008년 오바마 캠페인 수준인데, 당시 ‘변화’의 주인공은 젊은 흑인후보였던 데 반해 지금은 어울리지 않게도 백발의 백인노인이다.
트럼프의 메시지 역시 ‘위대한 미국’을 되찾자는 것이다. 샌더스의 미국이 포용의 미국이라면 트럼프의 미국은‘우리만의 미국’ , 배타적 미국이다“. 불법 체류자 다 내쫓고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아서 다시는 못 들어오게 하겠다”는 등 과격한 주장을 하고, 아시안, 무슬림, 여성 가릴 것 없이 소수계에 대해 저급한 막말을 해대는 데, 여기에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집단이 있다. 주로 기독교 보수신앙의 블루칼라 백인들이다.“ 과거 고등학교만 나오고도 잘살았던 우리 형편이 왜 어려워졌나” 답답해하는 저학력 백인 서민들에게 트럼프는 “쟤들 때문”이라고 답을 주고있다.
미국은 다양한 집단의 다양한 이해와 정서가 씨줄과 날줄로 얽히며 한 나라를 형성한다. 트럼프 이변도 샌더스 이변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민자 소수집단으로서 우리는 어떤 미국을 원하는가.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할지 앞으로 10개월 공부를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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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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