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4년간 대한민국 입법 권력의 향배를 결정하게 될 총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야권의 분열로 집권당의 어부지리가 예상되는 가운데 공천을 둘러싼 여당 내 싸움이 본선보다 더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여당 텃밭에서 공천은 곧 당선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지역 후보들 간의 신경전은 한층 더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하는 진실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내세우는 이른바 ‘진박 마케팅’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갈수록 요란해지고 있는 ‘진박 마케팅’을 보면서 갖게 되는 감정은 ‘진실하다’라는 아름다운 형용사가 당하고 있는 능욕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자신에 대한 절대 충성을 ‘진실한 사람’의 기준인 양 발언하는 대통령이나 ‘진박’을 ‘진실한 사람’과 동의어로 사용하는 정치인들이나 의미를 왜곡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진실하다는 것은 ‘마음에 거짓이 없고 순수하고 바르다’는 뜻이다. 이와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물들의 입에서 이런 단어가 마구 튀어나오니 어지러운 세상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정치인들의 진실함을 판별하는 기준은 단 두 가지다. 국민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와 정치적 소신에 일관성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습관적으로 말하지만 실제로 그런 인물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국민들보다 대통령이나 계파 보스에 대한 충성이 우선하고, 상황에 따라 언행과 선택을 달리하는 정치인을 진실한 사람으로 볼 수는 없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일관되게 지키면서 국민들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치인들만이 진실하다는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정치판에 이런 인물들이 흔하지는 않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민주당 대선전에서 선전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은 이 범주에 들어맞는 드문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분배와 복지에 방점이 찍혀있는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하는 노령의 샌더스 후보는 양당 체제가 확고한 미국 정치판의 아웃사이더다. 시장과 연방 하원의원 8선, 연방 상원의원 재선 등 평생의 정치생활을 무소속으로 이어왔다.
이런 샌더스의 정치 역정은 ‘진실함’이라는 단어로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정치 노선을 바꾼 적이 없다. 그리고 유권자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그 어떤 정치일정보다도 우선했다. 그는 일 년 내내 버몬트 주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유권자들과 토론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진실한 정치인’을 좋아하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되고 대통령에 당선될 현실적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지만 아이오와 코커스를 앞두고 꿈틀대는 그를 향한 유권자들의 열망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평생 동안 그가 보여준 진실함이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 던지고 있는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정치인이라면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정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샌더스는 현란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설파하고 있다. 대통령이 민주주의 가치를 마구 훼손하는 데도 반기를 들기는커녕 충성스러운 행동대원이 되기를 서슴지 않는 정치인들은 ‘진실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호칭할 자격이 없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은 진실한 정치인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사가 다 그렇듯 정치판에서도 진실함보다는 기만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처신이 성공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이런 정치인들로서는 결코 좋은 정치가 이뤄질 수 없다. 좋은 정치란 결국 진실한 정치인들과 그런 인물을 가려낼 줄 아는 유권자들의 안목이 빚어내는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가 있는 것은 원래 희귀한 법이다. 정치판의 진실함이 바로 그런 덕목이다. 날로 확산되는 정치적 무관심은 진실한 정치인들의 실종에서 한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유권자들에게 뜨거운 열망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은 오직 진실함뿐이다. 샌더스의 선전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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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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