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한바탕의 잔치가 벌어졌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잔치이다. 컴퓨터 공학이 만들어내는 가상현실은 실제가 아니면서도 실재하는 물리적 공간과 느낌이 흡사해 그 안에서 상호작용과 몰입이 가능한 환경이다. 현실이 아니니 상상인데, 그 상상이 너무나 생생하게 오감을 자극해서 실제와 유사한 체험을 하게 만든다.
지난 며칠 미국에서는 대략 2억 명이 새해에 대한 온갖 꿈을 안고 가상현실의 잔치에 참여했다. 잔치란 평소의 친소관계 접어두고 두루두루 함께 어울리며 함께 웃고 즐기는 자리. 비슷한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일터에서도 교회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파워볼 이야기가 꽃을 피우고, 직장 동료들은 단체로 로토를 구입해 기꺼이 ‘공동 운명체’가 되었다. 서먹한 자리에서 누군가 파워볼을 언급하면 모두가 대화에 동참해 한순간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기도 했다.
가상현실은 로토를 사서 손에 쥐는순간 시작된다. 당첨된다면 … 저택을 살 것인가 여행부터 갈 것인가, 직장을 계속 다닐까 아니면 회사를 하나 차릴까 … 즐거운 상상이 꼬리를 물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고민이 밀려든다. 상금을 일시불로 받을 것인가 30년 동안 분할 지급받을 것인가, 그보다 어디서 살아야 하나, 당첨된 걸 아는 사람이 없는 데로 가야하니 타주로 갈까 아예 한국으로 갈까, 재정전문가를 고용해야 하는데 믿을만한 사람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고민이 깊어지지만 결국은 가상현실, 고민도 달콤하다.
잔치는 13일 저녁을 기해 끝났다. 잭팟 상금 16억 달러로 세계 복권사상 최고기록을 세운 이날 파워볼 추첨에서 드디어 당첨자가 나왔다. LA 동부 치노힐스를 포함해 3곳에서 당첨 복권이 팔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첨번호 발표와 함께 ‘대박의 꿈’은 거품처럼 터지고, 2억명은 ‘가상’에서 밀려나 현실로 돌아왔다. 새해가 되어도 전혀 새롭지 않은, 그날이 그날 같은 익숙한 현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2달러나 10달러 혹은 20달러, 로토 산 만큼 얇아진 지갑뿐이다. 이런 결과를 다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계속 로토를 사는 것일까.
로토 단골 구매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첫째는 어떤 비현실적 행운에 대한 기대이다. 아무리 확률이 낮다 해도 당첨자는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혹시 아나, 그게 나일지… 하는 마음에 로토를 사고 또 산다. 2달러로 며칠 분의 행복한 공상을 사는 셈이다. 정신의 비타민 정도로 생각하면 효용가치는 있다.
하지만 백일몽 이상의 기대가 작용한다면 로토는 구입할수록 낭비다. 당첨 가능성이 거의 제로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벼락 맞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이 반증이다. 평생 살아가면서 벼락맞을 확률은 119만 분의 1. 파워볼 잭팟 당첨 확률은 2억9,220만 분의 1. 벼락 맞기보다 246배나 어렵다. 그러니 ‘당첨된다면 …’ 하고 했던 고민들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걱정하던 기우일 뿐이다.
둘째는 탈출하고 싶은 심리이다. 이달 월급을 못 받으면 다음 달을 살아갈 수 없는 재정적 압박감, 생계가 달려있으니 아니꼽고 더러워도 감수해야 하는 직장 내 갖가지 스트레스,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떠밀리듯 살고 있는삶 자체에 대한 회의 - 답답하고 남루한 현실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상상을 한다. 로토가 탈출구가 되지 않을까. 탈출 가능성 거의 제로이니 당첨확률 거의 제로임에도 로토가 위안이 되는 것이다.
벼락 맞기보다 힘든 잭팟 행운을 맞으면 행복할까? 지금의 현실에서 탈출하면 행복할까? 여러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결과는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 횡재를 하면 처음 얼마간은 행복의 극치를 경험하지만 몇 달 지나면 그저 덤덤해진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1970년대 말 일리노이 주 복권당첨자들과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있다. 결과를 보면 횡재도 횡액도 장기적 행복도에는 별 영향을 주지않는다. 행운도 불행도 적응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횡재는 종종 횡액을 동반한다. 로토로 돈벼락 맞은 사람들 중 70%는그 많은 돈을 다 잃고 비참한 최후를맞았다. “당첨 복권을 찢어 버렸어야했다”고 후회한 사람도 있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 우리는 빈몸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빈 몸으로 떠난다. 물건, 소유로 행복을 얻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것 같다. 답답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로부터의 탈출도 결국은 마음이 할 일이다. 마음을 다스려 자족하고 평안하다면 행복에그보다 확실한 처방은 없겠다. 마음 다스리는 일, 기도와 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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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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