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고국 대한민국을 떠나 미국에 유학 온 1974년은 유신독재가 장기집권 체제유지를 위해 시민 개인의 자유를 무제한 억압하던 암울한 때였다. 한국과 미국사이의 정기여객 서비스가 없던 그해 초여름 대한항공의 차터 여객기로 LA 공항에 도착한 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을 전부 덮고도 남을 정도로 내 가슴에 몰려온 것은 ‘자유’란 해방감이었다.
공기처럼 고마운 그 ‘자유’를 느끼는 마음은 공부를 마친 후 힘들기로 이름난 미국대학에서의 조교수 생활도 끝나고 한참 세월이 가고 나서도 하루 일과를 끝내고 대학연구실에서 나와 차를 타고 집으로 갈 때도 한결같았다. 정치적 환경 때문만이 아니라 천성으로 타고난 독립심 강한 성격 탓에 필자는 열다섯살에 시작한 객지유학 생활에서부터 의사결정에서의 자유가 없는 처지가 되면 못 견디게 힘들어 했었다.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와서 살고 있는 다른 모든 한인들이 그렇듯이 필자는 미국을 사랑한다. 그런데 세월이 가고 필자의 나이가 들고 자식들을 키우고 하면서 조금 더 이 ‘자유’가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왜 자유가 좋은가” 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철학적인 얘기가 아니라 생활인들의 마음에서 오는 의미에 대해서다.
한국도 이제, 적어도 남한에서만은, 독재도 끝나고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는데도 왜 한국에 사는 이들은 행복해 보이질 않는가. 왜 우리같이 미국을 일찍 찾아온 사람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미워하는 좌파세력들까지도 그들의 자식들은 전부 미국에 데려다 놓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왜 우리는 이곳에 사는가.
이곳은 개인 각자의 긍정적 에너지(positive energy)를 사회전체의 ‘선’ 과 연결시키기가 쉽기 때문이다.
군부독재에 맞서서 싸우던 운동권 세력들은 독재가 종식되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지침으로 자신들의 살아가는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바꾸었어야 했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독재’와 ‘투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 모든 것에 부정적인 프레임으로 싸움을 걸어 이제는 온 국민이 그들에게 진저리가 쳐지도록 되면서 우리 모두가 바라는 신선하고 올바른 야당에의 꿈은 뭉개버리고 그들 자신들도 ‘헬조선’의 자포자기적 막다른 길로 가버린 것이다. 한심하기로는 야당에 못지 않는 여당이 좋은 변화를 하도록 분위기를 만들 기회도 없어져 버렸다.
우리가 미국을 좋아하는 것은 나라 전체를 휘청거리게 할 엄청난 비극을 맞아서도 온 나라가, 또 그곳에 사는 거의 모든 이들이, 슬픔과 비극을 긍적적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노력을 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9.11이란 재난만이 아니다. 한인학생이 죄 없는 다른 학생들과 교수들을 총격 살해한 버지니아 텍 사건에 대처한 성숙한 미국시민의식과 한국의 세월호 사건을 보라. 이곳에서는 사회의 온갖 부정부패가 야기한 큰 재앙을 부정적인 세력들이 꼬드겨 비극에 의연히 대처해야할 유가족들을 어거지 세력으로 몰아간 그런 슬픈 일들은 없다. 인종갈등은 또 다른 차원에서 해결해야할 문제이지만.
사회의 집단의식이 헬조선 현상으로 나타나는 시기에 되새겨볼 자식교육이 빗나가서 생긴 또 하나의 비극도 있다. 아웅산 테러 때 순직한 미국유학파 출신 김재익 경제수석의 미망인이 남편의 모교에 평생 모은 수십억의 재산을 기증할 때 철없는 기자가 물었다. “자식들과 상의는 하셨습니까?” 거기에 대한 너무나 당연하고 멋진 답을 그분은 주셨다. “내 재산 내가 쓰는데 왜 자식들에게 물어봐야 하죠?”
우리가 사는 이곳은 자식교육도 쉽다. 긍정적인 적극적 사고를 하느냐 않느냐에 인생의 승패가 달려있다면, 이곳에서는 자식 개인의 긍적적 에너지를 학교에서, 사회가, 나라에서 더 큰 ‘선’으로 쉽게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가치에 의문이 생기는 이들이여. 알링턴 무명용사 묘역을 찾아가 보라. 건국의 아버지나 여러 훌륭한 역대 대통령들의 묘역보다도 이름 없는 일개 사병의 묘역을 훨씬 더 크고 멋있고 아름다운 성역으로 만들어 놓은 나라. “그가 누구인지 하나님만 알고 있는” 이름 없는 사병의 죽음을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중심지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나라. 나는 내가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은혜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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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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