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기적인가 아니면 이타적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무수한 철학적 성찰과 유전자까지 동원한 과학적 탐구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뚜렷한 결론도 나오지 않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결론을 낼 수 없는 명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우주 같다가도 어느 순간 모래알처럼 작아지기도 하는 것을 보면 우리들 마음속에는 이기심과 이타심이뒤섞여 있는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아닐까 싶다.
이타적으로 보이는 많은 행동들이 실제로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되곤 한다. 순수한 연민과 종교적 사랑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행위들 뒤에도 개인의 이름을 드러내고픈 명예욕이나 다른 이들의 좋은 평가를기대하는 인정욕구가 숨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인간사회는 그 동기와 목적이 무엇이든 조금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이타적행위들에 의해 한층 더 살만한 곳이 되어왔다. 수많은 이들의 기부와 봉사가 바로 그렇다.
그러니 이기심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폄하해서는 안 된다. 자기를 위한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이들을 돕고 사회를 살찌우는 좋은 이기심들도 얼마든 있다.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면서 자신들의 세금을 올려달라고 청원하는 억만장자들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최근 한국의 한 방송국이 특집을 위해 만난 시애틀의 억만장자 닉 하나우어의 인터뷰를 보면서 든 생각도 바로 이것이었다. 성공한 벤처캐피탈리스트인 하나우어는 뉴욕타임스로부터 ‘저항적 억만장자’라는 평을 들은 인물이다. 그는 낙수이론으로 대표되는 지난 30년 동안의 보수실험은 실패로 끝났다며 최저임금 15달러 인상안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중산층 구출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런 주장을 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는 것이 바로 부자들을 돕고 자본주의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같은 불평등 사회구조 속에서는 사람들이 체제 전복적 움직임에 나서더라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경고한다. 모두가 공존하기 위해서, 또 부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말이다.
몇 년 전 억만장자들이 세금을 올려달라고 연방의회에 청원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은 ‘계몽된 이기심’에서비롯된 것임을 천명했다. 계몽된 이기심은 원래 종교학자들이 사용하던용어이다.
‘계몽’과 ‘이기심’은 얼핏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여겨지지만 자본주의 경제학의 시조 아담 스미스는 이 두 개의 기둥이 떠받치는 경제를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했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과 공동체 의식을 의미하는 도덕 감정이 균형을 이룰 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경제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전통적 억만장자들의 규범과 의식을 깨뜨리는, 저항적 억만장자들의 계몽된 이기심은 이것에 뿌리가 맞닿아있다.
계몽은 합리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합리주의는 절충과 타협을 본질로 하고 있다. 의식 있는 억만장자들이 부르짖는 계몽된 이기심은 절충의 지혜라 할 수 있다. 조금 양보하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명한 이기심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인간은 대체로 이기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계몽을 통해 당장의 탐욕을 조금은 절제하는 게 장기적으로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정서적으로도더 큰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가진 것이 비록 많지 않아도 기꺼이 나누고 다른 이들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희생한다.
우리가 꿈꾸는 건 이타심이 지배하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다만 앞서가는 내가 뒤를 돌아보며 손을 내밀고 조금 양보하는 것이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는, 분별력 있는 이기심이 좀 더 확산되는 그런 사회를 바랄 뿐이다. 이미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이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한 채 부자 감세와 규제 완화만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한국의 부자들에게서 보게 되는 것은 계몽된 이기심이아니라 끝을 모르는 탐욕이다. 이런 탐욕적 이기심은 공존과 공생을 해쳐 결국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게 된다. 닉 하나우어는 이것을 알고 있는억만장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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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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