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대부분 아름답게 채색되는 속성이 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경험들은 성장을 위한 통증으로기억되고 괜찮았던 시간은 너무나도좋았던 시절로 머릿속에서 포장된다.
모든 것을 세세히 저장할 만큼 우리기억력의 용량이 크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그리움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보편적정서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사회에서는복고열풍이 뜨겁게 일었다. 특히 드라마와 노래 등 대중문화 분야에서과거에 대한 추억은 가장 잘 팔리는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현상을놓고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 과거에 진한 향수를 느끼는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진단도있었고 팍팍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심리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거는 있었던 그대로 우리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저명인사들의 자서전이 종종 진실논란에 휩싸이게 되는것은 이 때문이다. 조작 의도가 없을지라도 왜곡된 기억은 자주 장난을친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영광은 부풀려져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의 현실이 시원치 않다면 그럴 가능성은 더 크다“. 내가 왕년에는…”라는말을 입에 자주 올린다면 그것은 현재가 별 볼일 없다는 자기진술에 다름 아니다.
최근 한 백만장자가 출간한 책이화제가 되고 있다. 스티브 시볼드라는 이름의 자수성가 부자가 지난 30년 간 전 세계 부자 1,200명의 사고방식을 조사 분석해 쓴 ‘부자들은어떻게 생각하나’ (How Rich PeopleThink)라는 제목의 책이다. 시볼드는부자들의 사고방식을 “돈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돈을 친구로 여긴다”고 간결하게 정리한다. 그러면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부자들의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노스탤지어’ (nostalgia)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노스탤지어는 본래 고향을 그리워하는 군인들의 고통을 뜻하는 말로 심리적 장애를 일컬었던 의학용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에 대한향수 정도를 의미하는 일반적 단어로 쓰인다. 시볼드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로 노스탤지어를 사용했다. 부자들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지향적 사고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스탤지어는 시볼드의주장처럼 정말 멀리 해야만 할 부정적인 감정일까. 2000년대 초 노스탤지어에 관한 영국 사우스햄튼대학의 종합적 연구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런 인식이 상당히 강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노스탤지어에 고통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삶을 좀 더 의미 있는 것으로만들어 주고, 심지어 죽음에 대한두려움까지 낮춰주는 효과가 있음을 규명했다.
연구진은 노스탤지어에 빠지면 마음이 따스해지고 몸까지 따스해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특히 옛 노래를들을 때 이런 작용이 한층 더 활발해졌다. 그러니 올 초 한국에서 1990년대 가요를 재현한 예능프로그램‘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가 열풍을일으킨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노스탤지어에 순기능만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처지와 과거의 영광을 비교하도록 만드는 노스탤지어는 심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왕년’에서 못 벗어나는 게 바로 이런 노스탤지어다. 그러니 우울해지는 게 당연하다. 시볼드가 부자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 노스탤지어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한마디로 노스탤지어는 술과 같다고 보면 된다. 적당히 곁들이면 몸과마음을 따스하게 해 주지만 지나치게 빠져들면 오히려 우울함을 안겨주고 삶을 해친다. 현재의 곤고한 처지를 잊기 위한 ‘왕년 회고형’ 노스탤지어는 금물이지만 아주 가끔씩 가볍게 ‘따스한 추억형’ 노스탤지어에빠져 보는 건 유익하다. 삶의 실존적의미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자들 또한 예외는 아니지 않을까. 그들 역시 성공과 의미의 균형은 필요할 테니 말이다. 한해의 맨 끝자락 차가운 겨울 밤, 비틀즈의 ‘in my life’나 들으면서 오랜만에 옛사람들을 추억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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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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