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밑, 시카고 한인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 커뮤니티의 성격을 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우선 한국서 태어나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과 그 2세가 구성원이다. 시카고를 중심으로 메트로폴리탄에 퍼져 사는 10만 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각자의 생계를 유지하고 사회활동을 하고 친목을 나누고 나름 의미 있는 단체활동에 참여한다. 커뮤니티란 명칭을 붙이고는 있지만 연결고리의 성격이 매우 다양해 공동사회 또는 이익사회로 규정하기 어렵다. 사회의 성격을 3가지로 분류한 사회학적 접근에 따르자면 협동사회(게노센샤프트)의 범주에 가깝다. 이익사회 중 공동사회적 성격이 강하며 지배관계를 포함하지 않는 사회를 일컫는다. 한편으로 자생적인 단체와 한국과 연결된 단체가 있다. 개인 비즈니스도, 직장도 마찬가지다. 오다가다 만나는 이들 사이에 제3자 험담은 금기에 속한다. 구설의 대상이 친척이거나 기타 여러 유형의 인연으로 대화 상대와 가까운 사이이기 십상이다. 하버드대 스탠리 밀그램 교수가 반세기 전에 연구한 '분리의 여섯 단계 이론'(six degrees of separation)을 시카고 한인 커뮤니티에 적용하면 아마 3단계쯤으로 토막을 내도 될 것이다. 당장 실험을 해 보면 확인 가능하다. 지배관계가 없는 이익사회,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으면서 필요에 따라, 취향이나 성향에 따라 구성원들의 이합집산이 이루어 지는 곳이 이곳 한인사회다. 한인회를 예로 들면 한인회 입장에선 모든 한인이 회원이다. 그러나 이중 회비를 낸 이도 있고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이도 있다. 지난 7월 회장선거가 경선으로 치러진 사실조차 모르는 이가 있다. 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다. 한국과의 관계도 미국서 살면 미국사람이 되어야 한다면서 한국정치나 스포츠 등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가 있는 반면 오로지 한국 뉴스만 검색하는 이도 있다. 어느 쪽이나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도 선택을 강제하지 못한다. 자생적이고 매우 독립적인 구성원의 성향 때문에 이곳서는 소위 영(令)이 서질 않는다. 한인사회 실체의 단면을 그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 사회단체들인데 단체의 구속력은 당연히 약하다. 협의체일 수밖에 없고 활동경비가 단체장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활동내용에 따라 한국정부의 지원을 받는 단체도 있다. 평통과 재향군인회가 대표적이다. 한인사회와 단체들이 수십 년의 연륜을 쌓는 동안 발전했는가. 80년대의 한인회에 비해 지금의 한인회가 성장했다고 답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평통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 덕에 외형의 호화로움은 얻었을 지 몰라도 과거와 별반 차이가 없다. 시카고 상의는 아예 퇴보했다. 정통성 시비로 체육회는 건강함을 잃었다. 한인사회에 관심을 둔 이들에 한한 일이지만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 그 이유를 찾아 봐야 한다. 협동사회가 지니는 좋은 점은 정으로 엮여 있다는 사실이다. 감싸주고 격려하고 서로 의지한다. 그러나 이 것이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책임을 지고 묻는 엄격한 체계가 형성되기 어렵다. 시카고 코리안-아메리칸을 새긴 명함의 의미를 가볍게 여기는 의식이 만연하고 모금한 기금을 사용처와 근거도 없이 처리해 버리는 일이 잦다. 어떤 단체는 돈만 많이 낸다고 하면 검증도 없이 회장 명함을 파게 했다. 회원간의 우애나 친목이 단체의 발전을 가로막는 일은 허다하다. 모호함과 감싸주기가 단체 운영의 기본인 투명성을 해치는 도구로 이용된다. 또 하나, 단체 밖에서 단체들의 사회 봉사활동을 지원하고 기금이나 물품을 기증하는 한인들의 기부 문화는 예나 지금이나 융성한데 어디에 어떻게 제대로 쓰였는지 명확하게 공개하는 일은 드물다. 묻는 목소리가 없어서다. 공적 단체의 투명성, 이것이 새해의 화두였으면 싶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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