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일기’는 1952년 의대졸업을 앞둔 23살의 체 게바라가 석달 간 남미 대륙을 일주하며 느낀 바를 적은 회고록이다. 처음 견문도 넓힐 겸 장난삼아 시작한 이 여행은 그가 남미 토착민의 비참한 실상을 체험하면서 그를 혁명가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는 아르헨티나 의사로서의 안락한삶을 버리고 쿠바로 건너가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미국 부자들의 놀이터이던쿠바를 사회주의 혁명의 전초 기지로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카스트로다음으로 권력 서열 2위였던 그는 쿠바에서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볼리비아로건너가 ‘ 제2의 쿠바 혁명’을 꿈꾸다 실패, 정부군에 잡혀 사살돼 39살의 젊은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혼자만의안락이 아니라 모두가 잘 사는 사회 건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그는 전 세계젊은이와 지식인의 우상이 되며 사르트르에 의해 “가장 완벽한 삶”을 산 인간으로 칭송되기에 이른다.
1952년은 아르헨티나 노동자의 우상이었던 에바 페론이 죽은 해이기도 하다. 팜파 평원의 작은 마을 로스 톨도스에서 부농의 사생아로 태어난 에바는15살의 어린 나이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무작정 상경, 라디오와 연극 무대를전전하다 페론 장군의 눈에 들어 그의아내가 되며 노조의 지지를 이끌어내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에바는 페론 정부의 사실상 2인자로 노조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셔츠조차 없는 사람들’ (los descamisados)로 불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 혜택을 늘려 사회적 약자들로부터 ‘성모에비타’ (Santa Evita)란 칭호까지 받았다.
체 게바라와 에바 페론 같은 걸출한영웅을 배출한 아르헨티나는 지금 과연어떻게 됐을까. 나라는 부강하고 사회적 약자가 대접받는 이상 국가일까 아니면 재정 파탄으로 국가 부도를 몇 번내고 고실업과 고인플레, 저성장에 시달리는 망해가는 나라의 전형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할 필요조차 없다.
아르헨티나는 원래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20세기 초 유럽인들은 아메리카로 이민 갈 때 미국과 아르헨티나 둘 중어느 쪽이 더 발전 가능성이 있는 나라일까를 놓고 고민했다. 조선이 일본 식민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이미 지하철을 놓았고 농산물이 넘쳐 자국민을 모두 먹이고도 남유럽에 수출까지하던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지금 요모양 요꼴이 난 것은 정치를 잘못 해서이고 그 잘못된 정치의 핵심은 페론주의로 불리는 좌파적 포퓰리즘이라 하지않을 수 없다.
그 페론주의의 원조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최근 장장 12년 동안 부부가 차례로 대통령직을 물려받아가며 페론주의정책을 펴온 크리스티나 키르치너를 내쫓고 시장주의자인 마우리시오 마크리를 새 대통령으로 뽑았다. 마크리는 취임하자마자 전임자의 외환 통제와 수출세를 폐지하고 수입 절차를 간소화했으며 에너지 보조금도 없앨 것을 검토 중이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한 때 페론주의에 의한 경제 파탄을 미국 탓으로 돌렸다. 자기 나라를 포함한 남미의 빈곤은미국의 주변국가 착취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속이론’으로 불리는 이 이론은70년대 한국에 수입돼 지식인들 사이에널리 퍼졌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종속이론’을폐기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나라의 하나가 한국이다. 한국처럼 미국에종속된 나라도 별로 없는데 남미처럼망하는 대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경제 성장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70~80년대 독재 정권과 싸웠던 한국의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에게는 아직도 남미 좌파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남아 있다. 이들에게는 입으로만 약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실지로 이들에게 얼마나가혹한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아무런 반성이 없다.
굶주림과 가난도 모자라 3대에 걸친세습 통치로 최악의 인권 유린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동정이없는 것도 한국‘ 진보’의 특징이다. 유럽은 공산당원 조차 김정은을‘ 인류에 대한 범죄’로 국제 사법 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국의‘ 진보’는 꿀 먹은 벙어리다.
최근 안철수가 자신이 몸담고 있던새정치 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낡은진보’를 맹비난했다. 페론적 포퓰리즘과북한 인권의 참상에 대해 별로 얘기한적이 없는 안철수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한국의 ‘진보’가 ‘낡은 진보’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의 ‘낡은 진보’는 새해를 맞기 전 페론주의의 원조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왜페론주의를 폐기했는지 한번 돌아보기바란다.
<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