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문다. 설렘으로 시작됐다. 광복 70주년이다. 분단 70주년이다. 이 70이라는 숫자가 지닌 상징성 때문이었나. 뭔가 좋은 것이 올 것이라는 희년(禧年)에의 기대가 특히 높았던 2015년이었다.
그 2015년이 끝자락을 드러내면서 멀리 바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그러나 실망과 좌절의 신음이다. 한 해에 1만5,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압도적 자살률 1위다. 직장인 2명 중 1명이, 청소년은 10명 중 7명이 다른 나라로 가기를 원한다. 세밑을 어지러이 장식하고 있는 한국 발 뉴스들이다.
그 가운데 교수신문은 2015년의 사자용어를 혼용무도(昏庸無道)로 선정했다. 나라상황이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어지럽다는 뜻으로 대통령이 어지러움의 근원으로 지목된 것이다. 헬조선이다. 희망이 안 보인다. 그 자학의 외침에 가려서인가. 북한 관련 뉴스는 아예 관심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11년째 유엔은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의 인권탄압 사태를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버금가는 반(反)인륜범죄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 최고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안전보장이사회에 권고하는 결의안을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채택했다.
북한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그러나 여전히 관심 무풍지대다. 미국은 2004년에, 일본은 2006년에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다. 한국에서는 그러나 10년째 북한인권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발이 묶여 있다. 북한인권 문제의 주 당사자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 한국에서 북한인권 법안은 국회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 억류돼 종신형을 받은 임현수 목사 관련 소식도 그렇다. 임 목사가 캐나다 국적이어서 외국인으로 간주하는 것인지 국내 보도의 접근방식은 ‘쿨’하다 못해 ‘드라이’ 하기까지 하다. 과연 그래도 좋은 것인지. 우려에, 실망감이 앞선다. 동시에 새삼 한 가지 질문이 되뇌어 진다. 냉전시대에 이어 탈냉전시대에 이르기까지 70년이란 세월을 버텨온 저 북한이란 체제를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관련해 새삼 눈길을 끄는 것은 분단 70주년. 다시 말해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의 해를 맞아 호주의 북한전문가 로버트 켈리가 북한이란 체제에 대해 내린 분석이다. 그에 따르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다섯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 중 하나는 북한을 남한의 대안으로 스탈린이 세운 스탈린식 공산체제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두 번째는 세계화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반하는 깡패국가(rogue state)로 보는 것.
세 번째는 파시즘의 병영국가가 북한이라는 시각이다. 민족의 순혈을 주장하면서 인종차별주의정책을 서슴지 않는다. 그 북한 체제는 일본군국주의 모사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
이 세 가지의 북한관은 우파적 시각이다. 한국의 좌파, 그리고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외세로부터 한민족의 독립을 보호하는 민족 주체세력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이와 함께 강조되는 것이 고구려 역사이고, 북한은 현대판 고구려란 인식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시각, 다시 말해 그가 내린 결론은 북한은 국가라는 마스크를 쓴 조직범죄집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열거된 그런 측면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 체제는 수령과 소수 지배계급만 살찌우는, 근본에 있어 수탈에 근거한 폭압집단이라는 것이 그가 내린 정의다.
그 북한 체제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오직 생존이다. 사실에 있어 통일은 관심 밖이다. 아니,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은 연방제일 수 있다. 연방제는 체제공존에다가 수령과 소수 지배계급의 기득권 유지를 보장하니까.
수령 유일주의체제의 존속. 이를 위해 북한주민 수탈은 말할 것도 없고 마약밀매, 달러화위조, 인신매매 등 파렴치 범죄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긁어 들인 돈으로 수령과 측근들은 향락으로 지새는 체제가 북한이란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한 해가 또 저물어간다. 희망으로 들떴었다. 70년이란 한 세월의 마감과 함께 분단도 이제는 종식될지도 모른다는. 그 2015년 을미(乙未)년이 그런데 탄식과, 절망과 아쉬움 가운데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철저힌 무관심뿐이다. 북한 주민의 그 고통의 신음도, 평생 북한 주민을 위해 헌신하다가 종신형을 받은 목회자의 그 고뇌의 기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잊혀졌다. 들려오는 것은 ‘편 가르기’의 규성(叫聲)뿐이다. 그 대한민국이 어딘가 몹시 아파 보인다면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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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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