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 ‘블론디’가 반세기 넘게연재되고 있다. 칙 영과 딘 영 부자가 대를 이어 80여년 째 그리는 인기 ‘코믹스트립’ (4컷 만화)이다. 7순이 넘었을블론디는 여전히 예쁘고 남편 대그우드는 아직도 말단사원이다.
한국 신문의 유일한 연재 영어만화인 ‘ 블론디’의 대사를 날마다 외워살아있는 영어회화를 익히라고 고교영어선생님이 60여 년 전 채근했었다.
어려서 유난히 만화를 좋아한 나는신문쟁이가 된 뒤에도 각 신문의 연재만화를 섭렵했다. 특히 풍자와 해학과비판의식이 번뜩였던 김성환의‘ 고바우영감’ 정운경의 ‘왈순 아지매’ 안의섭의‘두꺼비’ 등은 필독수준이었다. 청소년때는 김용환의‘ 코주부’와 신동헌의‘ 주태백’ 팬이었다. 요즘 스포츠 신문 지면을 도배질하는‘ 장편 극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미국에 온 뒤 본바닥 코믹 스트립을즐겼다. 특히 찰스 슐츠의 ‘피넛츠(Peanuts)’가 좋았다. 주인공 찰리 브라운은보름달 얼굴에 머리카락이 달랑 한 개다. 고바우 영감은 정수리에 한 가닥이곧추 섰지만 얘는 앞이마에 곱슬머리가하나 매달렸다. 1946년 생으로 올해 7순이지만 아직도 초등학생 꼬마다. 그의파트너인 비글 종 개‘ 스누피’도 여전히강아지다.
며칠 전 한국영화를 보려고 영화관에 갔다가 횡재했다. 찰리 브라운 만화영화 ‘더 피넛츠 무비’도 거기서 상영중이었다.“ 웬 떡이냐”며 들어가 훔쳐봤다. 찰리 브라운이 이웃에 이사 온 빨강머리 소녀를 꼬드기려고 허둥대며 실수를 연발하는 내용의 3D 영화였다. 하지만 안경 없이 보려니 화면의 초점이 맞지 않아 30분도 못 보고 한국영화 상영실로 옮겼다.
그 영화보다 꼭 50년 전인 1965년 12월9일 찰리 브라운이 일약 TV영화에데뷔했다. CBS가 성탄특집으로 제작 방영한 1시간짜리 만화영화‘ 찰리 브라운크리스마스’이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의미는 무엇인가’가 주제였다. 종교냄새때문에 별 볼일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달리 이 특집프로는 공전의 히트를 날렸고, 그 후 해마다 재방영되는 클래식이 됐다.
소심하고 늘 걱정거리가 많은 찰리브라운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우울증에 빠진다. 모두들 샤핑에만 정신이팔린 세태가 못 마땅하다. 크리스마스연극의 감독을 떠맡았지만 출연할 친구들이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는 ‘현대판’공연을 하자며 딴죽을 건다. 무대 소도구로 소나무 묘목을 사왔다가 번쩍이는큰 인조 트리를 기대한 아이들로부터왕따 당한다.
돌아서 가는 아이들에게 찰리 브라운이 “크리스마스의 참뜻이 뭔데”라며 절규한다. 총명한 친구 라이너스가 “…천사가 이르되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성경구절(눅 2:8~14)을 암송하고 “그게 크리스마스의 참뜻이야”라고 말한다.
찰리 브라운이 소나무를 집에 가져와별 장식을 매달자 가지가 휘어지며 쓰러진다.“ 망했다”라는 그의 탄성과 달리집밖에는 동네 성탄장식 콘테스트에서1등을 차지한 스누피의 개집이 호화찬란하다. 회심하고 찾아온 친구들이 그장식을 떼어 찰리의 소나무를 멋지게장식한다. 모두 눈 내리는 밤하늘을 향해 ‘천사 찬송하기를’ 캐롤을 합창하며막이 내린다.
이 만화영화 외에도 연말에 재방영되는 단골 영화들이 있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2급 천사의 도움으로 자살을 면하고 재기하는‘ 멋진 인생’ (1946년), 메이시 백화점 뉴욕본점의 노 직원 크링글이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진짜 산타크로스임을 법정에서 판정받는 ‘34가의기적’ (1947), 구두쇠 스크루지가 주인공인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1938) 등이다.
이들 영화 주제는 성탄계절의 샤핑광기나 요란한 송년파티와 거리가 멀다.
지난 한해의 삶을 반추하고 가족애를돈독히 하며 불우이웃을 돕도록 부추긴다. 이런 영화들이 수십년 간 재방영돼도 성탄계절의 흥청망청 세태는 여전하다. 대머리 찰리 브라운과 역시 머리가드문드문 난 라이너스처럼 크리스마스의 참뜻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자꾸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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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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