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스포츠는 흑인들에 의해지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프로농구 NBA는 흑인 선수들이 압도적이다. 최고 인기 스포츠인프로풋볼 NFL 또한 흑인선수들이 절대 다수다. 하지만 포지션별 인종구성을 보면 전체와는 완연히 다른 경우가 많다. 특히 NFL 쿼터백이 그렇다.
지난 시즌 전체 NFL 선수 1,155명을 인종별로 보면 흑인이 68%로 절반을 훨씬 넘었으며 백인은 28% 정도였다. 하지만 풋볼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으로 꼽히는 쿼터백의 인종구성은 이와 정 반대다. NFL 쿼터백 가운데 흑인 비율은 20%를 조금넘기고 있을 뿐이다.
스포츠 사회학자들은 포지션별 인종구성의 불균형을 ‘스태킹’ (stacking)이라고 부른다. 특정 인종이나 민족집단 선수가 팀 스포츠의 특정 포지션에서 과도하게 많이, 혹은 과도하게 적게 나타나는 현상을 이른다.
스태킹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포지션이 바로 풋볼의 쿼터백이다.
풋볼은 팀 스포츠지만 쿼터백의비중이 절대적이다. 쿼터백은 풋볼필드의 야전사령관으로 불리는 포지션이다. 순간순간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조율함으로써 팀의 승패에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런 만큼 민첩한 판단력과 리더십이 요구된다.
하지만 흑인 선수들은 몸으로 뛰는 일은 잘해도 머리는 백인들만 못하다는 편견에 의해 오랜 세월 피해를 입어왔다. 이런 편견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포지션이 쿼터백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흑인이 쿼터백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웠다.
지난 20여년 사이 인종적 인식이많이 개선되고 NFL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실력 있는 흑인 쿼터백들이 많이 등장하게 됐다. 주전으로 올시즌을 시작한 흑인 쿼터백은 모두8명이다. 수십 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전체NFL 쿼터백들 가운데 흑인 비율은여전히 형편없다.
수적인 부족도 문제지만 이보다더 심각한 것은 경기출장에 있어서까지 흑인 쿼터백들이 차별을 받고있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자인 브라이언 볼츠는“ 지난 13년간 NFL의 쿼터백 교체 실태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흑인 쿼터백들은 같은 실수를 할 경우 같은 실력을 가진 백인 쿼터백들에 비해 주전에서 밀려날 가능성이1.98에서 2.4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스포츠경제저널’ 최신호에 발표했다.
이런 차별적 인식은 선수기용에서 뿐 아니라 쿼터백들 언행에 대한 SNS 상의 반응에서도 나타난다.
NFL 최고스타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쿼터백 탐 브래디는 지난주한 지역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널드 트럼프는 내 오랜 친구이기때문에 그가 얼마나 인종차별적인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지지한다”고 말했다. 개인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지만 브래디의 위치와 트럼프를 둘러싼 논란에 비춰볼 때 적절치 않은 발언이었다. 하지만 백인 팬들은 이 발언에 관대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이번 시즌 MVP급 활약을 펼치며 캐롤라이나 팬서스의 무패행진을 이끌고 있는 흑인 쿼터백 캠 뉴튼을 바라보는 백인 팬들의 눈길은 곱지 않다. 특히 터치다운 성공 후 그가 추는 자축 댄스는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그는 롤 모델 자격이 없다” “아이들 보기가 부끄럽지 않느냐” 등의 비난을 쏟아진다. 이처럼 흑인과 백인 쿼터백들에게는 여전히이중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볼츠의 연구는 미국사회 전반은물론 실력이 최우선시 돼야 할 프로스포츠에서조차 인종차별이 잔존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이 연구가 지닌 더 중요한 의미는 이런 차별이 결국은 팀의 성적을 저해한다는 것을 규명했다는 사실에 있다. 볼츠는 흑인 쿼터백들을 주전에서 뺄 경우 팀 성적이 백인 쿼터백들을 벤치에 앉혔을 때보다 나빠지는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처럼편견과 차별에는 상응하는 대가가뒤따르게 돼 있다.
편견과 차별은 조직과 사회의 건강성과 성장을 저해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실력대로 평가해 기용할 때 역량은 극대화 된다. 인종은 물론 성, 지역, 학력, 종교 등 우리 사회에는 인간들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요소들이 차고 넘친다. 이런것들에 볼모로 잡혀 있는 한 일류 국가, 일류 조직이 되겠다는 건 한낱 공염불이자 난망한 목표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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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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