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 주 플로리다에서 재미있는사건이 벌어졌다. 시작은 토리 킨이라는 여성이었다. 동네 맥도널드 드라이브 트루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돈을 내려던 순간 그는 마음을 바꾸었다. 자기음식 값만 낼 게 아니라 뒷사람 음식값도 함께 지불하기로 했다. 누군가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도록 깜짝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다. TV 뉴스에 자신이 이름모를 선행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줄은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은 그가맥도널드를 떠난 후였다. 드라이브 트루계산대 점원이 다음 자동차 손님에게“앞 손님이 음식 값을 냈다”고 하자 깜짝 놀란 그 역시 뒷사람 음식 값을 대신 내겠다고 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선의의 선물을 받고 나자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감사와 흥분으로 가슴이 차오르는 행복감을 경험하면서 그 자신도같은 선의를 베풀고 싶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친절 바이러스’가날아든 것인데, 그 바이러스의 전염성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 지를 그날드라이브 트루 계산대 점원은 똑똑히지켜보았다.“ 내가 받았으니 나도 뒷사람 음식 값을 내겠다”는 선행의 행렬이멈추지를 않자 점원은 15번째부터 종이에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나도~’‘ 나도~’로 이어진 선행은 몇시간을 지속되며 무려 250명이 동참했다. 맥도널드에서 12년 간 근무해온 그점원은“ 이런 경험은 생전 처음”이라며친절과 선행의 릴레이에 한 몫을 담당한 것만으로도 큰 축복을 받은 느낌이라고 했다.
지역 TV에 이 소식이 보도되자 가장놀란 사람은 토리 킨이었다. 자신이 가볍게 시작한 행동이 이렇게 큰 파급효과를 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한번 기분좋게 해줄 요량으로베푼 친절이 씨앗이 되어 한바탕의 무작위 친절운동이 펼쳐진 것이었다.
지난달 파리 테러, 이달 초의 샌버나디노 테러, 거기에 가짜로 확인된 LA통합교육구 학교 테러 위협까지 - 증오와 분노, 불신과 두려움으로 세상이 어수선하다. 마켓에서든 길에서든 누군가옆으로 다가오면 일단 경계심이 발동하고, 비행기 여행 중 무슬림이 옆에 앉으면 내내 불안하며, 모르는 사람이 친절을 베풀면 감사하기보다 저의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 요즘 사회 분위기이다. 아는 사이가 아니면, 동족이 아니면,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한겨울 날씨처럼 냉랭한데, 그 얼어붙은 지각을 뚫고 따뜻한 기운이 솟아오른다. ‘비밀 산타’와‘이름 없는 천사’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하니 세상이 훈훈하다. 사랑의 계절, 크리스마스 절기가 되었다.
캔사스의 한 도시에서는 경찰관들이‘투 잡’을 뛰고 있다. 경찰 본래 업무와산타클로스 업무이다. 몇주 전 익명의‘비밀 산타’가 찾아와 돈을 맡기면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나눠주라고 부탁한 것이 발단이었다. 경찰관들은 자신들도 돈을 모아 보태고, 재정적으로 어려운 주민 명단을 만들어‘ 산타’ 업무를보고 있다. 경찰이 차를 세우면 교통위반 티켓을 주는 줄 알고 긴장하던 주민들은 티켓 대신 현금을 받으면서 세상을 다시 보고 있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사랑과 배려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경험이다.
오하이오에서는 며칠 전 ‘이름 없는천사’가 월마트 두 곳에 나타났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싶지만 돈이 없어 선금만 걸어놓고 애태우던 가난한 부모들을 위해 그는 10만 달러가 넘는 액수를 대신 내주었다. 성탄절 아침,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그 부모들은 ‘천사’에게 얼마나 감사할 것인가. 그런 경험이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과의 나눔으로 이어지면서세상은 살만해진다. 몇 년 전 인디애나의 한 굿윌 매장에는 4인 가족 산타가등장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중고 물건을 사는 그곳에서 가족들은 샤핑객들에게 현금을 나눠주었다. 자신들도 굿윌에서 샤핑하며 겨우 겨우 살아가던때가 있었는데 이제 살만해졌으니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온도를 바꾸는 것이 어쩌면생각보다 간단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유기체, 내가 웃으면 옆 사람이 웃고,내가 화를 내면 옆사람이 화를 내는서로 연결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행복 바이러스가 돌면 같이 행복해지고증오 바이러스가 돌면 같이 증오에 눈이 머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맥도널드 음식 값 한번 내준 친절이그날 수백명을 행복하게 했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쏟아내면 미움의 릴레이가,선의를 내놓으면 선의의 릴레이가 우리모르는 곳에서 펼쳐질 것이다.
성탄절이다. 예수는 우리가 세상에무엇을 내어놓아야 할 지 몸으로 가르쳤다. ‘사랑’이다. 냉랭한 세상의 온도를 무엇으로 바꾸겠는가. 사랑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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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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