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한국의 유력 일간지에실린 모 부장의 칼럼이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간장 두종지’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서 언론사 부장은 점심시간에 여러 명이 회사 인근 중국집을 찾아 음식을 시켰는데 머릿수대로 간장종지를 주지 않았다며 중국집‘ 처사’에 불만을 터뜨렸다. 칼럼은 거창하게 ‘아우슈비츠수용소’와 ‘마지막 소원’까지 들먹였다. 간장종지 가지고 ‘갑 행세를 한’중국집에 그저 불쾌했던 것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분노했던 것같다.
쓴 이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칼럼은 엄청난 화제가 됐다. 소재의찌질함 때문이었다. 물론 소재가 아무리 찌질하다 해도 그것이 어떤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면 충분히 칼럼으로 다뤄질 수 있다. 하지만칼럼을 두세 번 반복해 읽어봐도 그런 흔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공적으로 소중히 다뤄져야 할 신문지면이라는 공간을 이용해 개인적 화풀이를해 댄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면의 사유화’ ‘언론의 횡포’ 등등 칼럼에 쏟아진 무수한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이 글은 칼럼으로서 제몫을 충분히 했다. 한국사회에서 점차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분노의 잘못된 방향성을 아주 잘 보여준 사례였기 때문이다“. 서울 한 구석의 작은 중국집에서 느낀 섭섭한감정을 격정적으로 토해냈다면, 적어도 이 부조리한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같은 수준의 질문을 해야 할것”이라는 한 언론인의 지적은 정작분노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눈을 감거나 외면하고 있는 언론의 비겁함에 대한 날선 비판이다.
사적 분노는 지나치면 해롭다. 그러나 공적 분노는 사회를 개선하고 끌고 나가는 긍정적 에너지가 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사적 분노와 공적 분노의 균형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사적인 영역에서의 분노는SNS와 인터넷 등을 타고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공적 분노는 점차 실종되고 있다.
이런 현상의 중심에는 언론이 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부조리한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애써 이를 못 본 척 한다. 국민들이 알고 분노해야 할 의제는 의도적으로 기피한다. 세상은 소란스러운데어떤 공영방송 뉴스를 보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처럼여겨질 정도다.
물론 모든 책임이 언론에만 있는것은 아니다. 독일에 거주하는 철학자 한병철은 분노상실의 원인을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성과사회에서 찾고있다. 그는 2012년 출간돼 큰 반향을일으킨 책 ‘피로사회’에서 “끊임없이성과를 내고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기착취’의 시대가 되면서 투쟁은 집단과 이데올로기, 계급이 아니라 개인들 사이의 것으로 변질되고있다”며 이로 인한 탈진과 고갈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분노하는 법을 잊어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개별 사안들에 대한 짜증이나 신경질은 늘어나지만, 현실에 대해 총체적으로 의문을 던지는 ‘분노능력’은 없어지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낸다. 한병철의 표현처럼 분노해야할 때 분노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2013년 95세를 일기로 타계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상징 스테판 에셀은이런 분노능력의 중요성을 일평생 저술과 실천을 통해 부르짖었던 지성인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러분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를 바란다. 이것은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분노했듯이 여러분들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존 F. 케네디가 단테의‘ 신곡’을 재해석해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자들을 위해 예약돼 있다”고 말했듯스테판 에셀에게도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우리는 당장의 안온함과내 삶의 작은 이익을 위해 분노하지않기를 선택하지만 그 결과는 결국부메랑이 돼 우리에게 돌아오게 돼있다. 인간들 사이의 관계망은 그렇게 얽혀 있다.
정말 분노해야 할 일은 외면하면서사적인 감정과 복수심은 무분별하게배설하는 사회는 어른스러움이나 성숙과 거리가 멀다. 우리가 성과와 자기착취에 몰두하느라 분노능력을 잃어버린 사이 사회적 부조리와 경제적 불평등이 괴물처럼 자라버린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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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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