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버나디노 산속, 레이크 애로헤드에서 자란 마이클은 키가 컸다. 아이들은 그를 보면 거인인줄 알았다. 37살의 그의 곁에는 늘 아이들이 있었다. 두 번의 결혼에서 각각 3명씩, 자녀가 여섯이나 되니 항상 아이들을 달고 다녔다. 자기 아이들을 가르칠 겸 소년소녀 축구 코치를 7년이나 했다. 지난 2일 직장 송년파티에 가느라 집을 나간 후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샌타애나에 살던 틴(31)은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났다. 직장이 멀어서 출근하는데 두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틴과 그의 엄마는 ‘안전한 나라’에서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베트남을 탈출했었다. 카운티 공무원으로 자리를 잡은 그는 내후년 결혼식을 앞두고 웨딩드레스를 고르던 중이었다. 직장 파티에 쓸 도넛을 사들고 지난 2일 출근했던 그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샌버나디노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이, 죽어서, 우리에게 이웃으로 다가왔다. 카운티 보건국 공무원으로 일하며 LA, 폰태나, 업랜드, 리알토 등지에서 살아가던 남가주 주민 14명이 송년파티 행사장에서 참혹하게 사살되었다. 유가족과 동료, 친구들이 회고하는 그들은 남가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그날 거기서 왜 죽어야 했는지 … 답은 없고, 무참하게 뚝 잘려버린 그들의 삶의 이야기만이 우리의 가슴을 저미고 있다.
3주 전 파리 테러가 충격이었다면 샌버나디노 총기난사사건은 남가주 우리에게 불에 덴 듯 생생한 아픔이다. 고통도 슬픔도 분노도 날 것이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총을 쏘아댄 범인들에 분노하고, 여전히 총기 확산에 열 올리는 총기협회(NRA)에 분노하며, NRA 눈치 보느라 총기규제 말도 못 꺼내는 정치인들에 분노한다. 분노는 정당하다. 하지만 분노의 봇물이 엉뚱한 데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샌버나디노 참극이 보도 되었을 때 범인이 무슬림은 아니기를 바랐었다. 무참한 희생에 더해 이슬람극단주의 테러 공포까지 합쳐지면 후유증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사건은 IS에 동조하던 무슬림 부부의 테러로 가닥이 잡혔다. 파키스탄 태생의 아내가 IS에 충성맹세를 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남가주 무슬림 커뮤니티는 숨도 크게 못 쉬며 긴장하고 있다.
총기난사에 대한 분노는 어쩔 수 없이 무슬림 증오로 이어지고 있다. 범인 사이드 파룩(28)이 참석했던 이슬람 사원에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무슬림 주민들이 신변위협을 느끼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 몇몇 매체의 자극적 보도 역시 무슬림 증오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 뉴욕포스트는 표지에 ‘무슬림 살인자’라는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무슬림 커뮤니티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미국사회가 큰 숙제를 앞에 두고 있다. 전국에 300만 정도 되는 무슬림 이민자들의 삶은 9.11 테러 이후 고난의 연속이었다. 테러사건이 터졌다 하면 무슬림부터 의심하는 분위기에서 이들은 가슴을 졸이고 또 졸이며 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적대감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무슬림 차세대이다. 그들을 미국의 건강한 시민으로 키울 것인가 IS 같은 광신적 테러단체들에 내어줄 것인가를 미국사회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LA 타임스가 샌버나디노 사건 이후 무슬림 커뮤니티의 근황을 보도하면서 UCLA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의 경험을 소개했다. 유세프라는 이 학생은 9.11 테러가 터진 후 생애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집안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다. 아버지가 돌연 감원을 당했는데 새 직장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의 아버지는 ‘모하메드’라는 이름을 ‘모’로 고쳤다. 집밖으로 나가면 소년은 끝없는 조롱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무슬림이라는 이유였다.
이번 사건의 범인 사이드도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나이를 짚어보면 9.11 테러 때 그는 사춘기였다. 한창 예민하던 시기에 적대감과 따돌림에 시달리면서 가슴 속에서 어떤 적의를 키우지는 않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이후 반 무슬림 정서는 날로 굳어지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조만간 성인이 된다는 사실을 미국사회는 명심해야 한다. 유럽의 성난 무슬림 청년 집단이 미국에서도 형성될 수가 있다.
극소수 이슬람 과격분자들과 대다수 무슬림 주민들은 구분해야 한다. 사회가 무슬림 청년들을 배척한다면 그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IS 같은 테러단체들이 두 손 들고 환영할 것이다. 분노와 포용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하겠다.
<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