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비아는 국민 절반이상 빈곤층•평균 수명 40세
치소모 병원 전경
영어 공식 언어 사용. 인구 87%가 기독교인 ...68% 개신교
치소모 병원은 설계.시공 등 모든 과정 허일봉 선교사 손 거쳐
20에이커 부지에 15개 병상 갖추고 24시간 3명 의사가 교대로 담당
▲ 6월 22 월요일 잠비아 (Zambia)
잠비아는 서기 약300년에 기술이 발달된 부족들이 이주하기 까지는 코시안 사냥군들이 살던 곳이다. 대부분 영연방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들 처럼 1964년에 독립되었다. 대통령중심제 공화국으로 2012년 추정으로 1천 5백만의 인구에 수도 루사카는 약 2백만의 인구다. 국토는 75만 평방km로 남북한의 3.5배 규모다.
잠비아는 73개의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반투어를 쓰는 반투족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공식 언어는 영어다. 국가 경제의 대부분이 광산물의 수출로 이룩되며 특히 구리생산이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민소득이 1인당 $1,810로 (GDP nominal, 2014) 65%이상이 정부가 정한 빈곤층 이하이다. 수명이 평균 40세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수명이 가장 짧은 나라다.
1996년 헌법에서 기독교국가로 선포되었으며 약 87%가 기독교인으로 68%가 개신교, 21%가 로마가톨릭이다. 무슬림교인이 1%가 있다.
탄자니아 다레살렘에서 6시 5분 출발하는 잠비아 수도 루사카 (Lusaka)항공기에 몸을 담았다. 국제선이지만 항공기는 100여명 탈수 있는 비행기다. 저녁 6시5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 30분 비행하여 저녁 7시 35분에 루사카에 도착했다 (잠비아는 탄자니아 보다 한 시간 늦음).
루사카 공항에 허일봉, 전미경 두 부부선교사의 영접을 받았다. 두 분 모두 처음 뵙는 분이지만 뉴욕에서 알고 있는 그루터기 선교회 홍종임 대표를 통하여 듣고 있었다. 허선교사가 운전하는 자동차로 시내를 통과 두 분이 운영하는 병원 부근 모텔로 향했다. 저녁식사 대용으로 모텔로 가는 도중 식품점에 들려 우유와 빵을 샀다. 뭄부아 가든이란 모텔에 도착한 것은 밤 9시 가까이었다.
뉴욕을 떠난 지 벌써 3주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빈약한 숙박시설로 불편한 날이 적지 않았다. 더운 물이 잘 나오지 않아 샤워를 하지 못한 날도 많았고 호텔음식도 때때로 입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매일매일 임하였다.
몸부아가든 모텔은 넓은 터에 20개 정도의 방갈로로 된 모텔로 수영장까지 있지만 시설과 서비스에서 너무나 뒤져있다. 전기 아웃렛이 타서 고장이 나 쓸 수 없었고 더운 물이 잘 나오지 않아 샤워도 할 수 없다. 아침 식사는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가져왔다. 나는 아침을 뜰에 있는 테이블로 옮겼다. 고양이 한 놈이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결국 베이컨과 계란 후라이를 그 녀석과 함께 나눠 먹은 격이 되었다.
▲ 치소모병원(Chisomo Hospital)
치소모 병원은 허일봉, 전미령 부부 선교사가 세운 병원이다. 치소로만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종족인 반투종족이 사용하는 Chichewa 언어로 “은혜(grace)”란 뜻이다.
아침 9시경에 허일봉 선교사가 와 치소모병원으로 향했다. 시내중심지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큰 도로변 상에 치소모병원 간판이 크게 붙어있다. 20에이커의 넓은 대지위에 세워진 병원은 규모가 크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진료소 정도로 생각했었다. 허선교사는 3동으로 된 병원건물내부를 안내하면서 설명을 했다. 허선교사가 현지인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직접지은 건물들이다. 건축을 공부한 사람도 아닌 허선교사는 설계, 시공, 완공에 이르기 까지 자신의 손을 거쳤다. 타인에게 마길 경우 돈도 많이 들고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건축을 위해 한국에 가서 직접 건축현장에 뛰어들어 노동을 하며 건축에 대한 것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허선교사는 병원운영은 간호사인 부인 전미령 선교사에게 맡기고 밖의 일을 주로 담당하고 있지만 병원 이사회 이사장직은 허선교사가 맡고 있다.
진료실, 수술실, 응급실 등 병원이 갖출 시설이 되어있으며 분만실이 완공상태다. AID 병에 대한 상담 및 검사도 실시하며 말라리아 예방주사와 각종 예방주사도 접종한다. 현재 병상은 8개에 불과하나 새로 완공된 독방 7개를 합하면 15개의 병상이 된다. 24시간 오픈하며 3명의 의사가 교대로 담당하고 있다. 간호사 출신인 전미령 선교사와 10명의 현지인 간호사들이 일하고 있다.
현재 30명의 직원이 병원에 일하고 있으며 시큐리티와 건축 등 각종의 일을 하는 고용인들도 상당한 숫자에 속한다. 높은 인건비 때문에 의사와 간호사들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유학생으로 뉴욕 올바니 대학에서 수학한 여성으로 현지인과 결혼한 유리씨가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수련차 한국에서 온 두 젊은 남녀도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병원안내를 끝낸 후 전미령 선교사와 나는 병원의 회계책임자가 운전하는 차로 치소모센터라는 곳으로 향했다.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거리의 아이들을 수용하고 있는 곳으로 치소모 병원의 원목으로 있는 아론 목사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치소모 병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곳이다.
아론은 잠비아의 한 종족의 추장이었으나 이 높은 직위를 포기하고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 병원에서 약 30분 걸려 도착한 이곳에 책임을 맏고 있는 조세핀 시오(Josephine Siwo)씨는 우리를 반가이 맞았다. 그는 25명의 남녀 아이들이 기거하는 방과 시설들을 일일이 보여주었다. 뒤뜰에 있는 우물이 있으나 현재 물이 고갈되어 깊이를 더 파야한다고 했다. 이들은 남여 고등학교 학생들 학교에 보내고 있지만 공부를 하기 싫어서 다시 이곳을 떠나는 아이들도 있다.
루사카 시 구경을 위해 시내로 향했다. 2백만이 넘는 대도시라지만 고층빌딩은 몇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삼성이 구입한 Findeco House빌딩이 가장 대표적인 고층건물이다. 건물 꼭대기에 삼성의 광고판이 있어 다운타운에 오는 사람들은 삼성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야간에는 건물에 불이 켜져 루사카 다운타운의 명물이 되고 있다.
▲ 꿈을 이룬 전미령 선교사
시내를 구경한 뒤 모텔에 들어오니 4시가 되었다. 작은 공원같이 넓은 모텔의 경내를 거닐면서 미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나무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6시가 되어서 허선교사가 모텔로 와 선교사 부부의 자택으로 안내했다. 병원 옆에 작은 단층으로 된 사택이 있다. 김치와 몇 개의 반찬으로 정성껏 차린 한식이다.
식사를 하면서 사적이야기를 물어보았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부인이 먼저 대답했다. “보즈와나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그곳 그루터기 선교사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나보다 나이가 적은 남편이 청혼을 먼저 해왔습니다. 나는 결혼을 승낙하는 조건으로 진료소를 지워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진료소가 아닌 이러한 큰 병원을 세워주었습니다.” 허선교사는 말이 듣고 그냥 웃고만 있었다.
“간호사로서 왜 한국을 버리고 아프리카를 선교지로 선택했습니까?” 물어 보았다. “저는 어려서부터 타잔영화를 보면서 아프리카를 좋아했습니다. 성장해서 간호원으로 일할 때는 슈바이처의 전기도 읽었습니다. 아프리카를 꿈꾸어 왔습니다.” 꿈을 이룬 여인이다. 타잔은 없어도 아프리카에는 분명히 왔다. 그것만이 아니다. 원했던 진료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종합병원을 갖게 되었으니 꿈을 이루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일봉, 전미령 선교사는 그루터기 보츠와나 선교사로 처음 파송되어 그곳에서 두 사람이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1993년 새로운 선교지 잠비아로 파송되었다. “보츠와나를 떠날 때 헌 자동차와 1주일 양식 그리고 약간의 돈 모두 합해도 1만 달러의 가치도 되지 않았다. 잠비아에 들어온 날이 부활절 날이었다. 비는 오지 않았는데 무지개가 나타나 우리를 인도했다. 루사카에 도착하여 우리 부부는 한 시간 동안을 붙들고 울었다. 그런데 다음날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돕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후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런데 언제나 응답이 왔다” 허선교사는 그 때를 회상했다.
아무런 후원 없이 자체 선교를 위해 가게를 운영하며 간호사인 부인 전미령 선교사가 무의촌 지역 의료 전도를 하면서 사역이 시작되었다. 잠비아 카젬바 지역에는 진료소와 유치원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동 진료를 다니는 중 부모 없는 아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삶을 사는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현실을 보고 고아와 어린이들을 치료하는 병원을 소망하여 2005년 현 부지를 구입하고 2010년 병원을 개원했다. 병원비를 낼 수 있는 환자에게는 정상적인 진료비를 받으나 아주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무료로 진료를 하고 있다.
현재 병원 운영은 자체 운영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보츠와나에서 기아자동차의 대리점과 다이아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그루터기 김주연 선교사가 매달 충당해주고 있다. 사업을 열심히 하여 그루터기 선교사들을 돕는 일에 헌신하는 선교사다. 허선교사는 병원이 100% 자체운영을 위해 여러 가지로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에 의료선교사역은 여러 곳에서 하고 있지만 병원은 에티오피아 명성병원을 비롯 4개국에만 있다고 허선교사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후원교회나 후원단체도 없이 이러한 큰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경의의 일이다. 눈물과 기도, 땀과 피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가능하였을까?
결혼한 지 오래되었지만 부부사이에 자녀가 없고 오직 사역에만 열중하는 두 선교사를 보니 사적으로는 동정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의 후원도 없이 무일푼으로 문화, 언어, 풍습이 다른 오지에 몸을 던져 이 큰 것을 이룩한 이들 부부 선교사들의 업적에 경의와 찬사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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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진<빛과 사랑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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