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식당 가에서 자주 접하는 삼삼오오 식사 자리의 대화 내용 십중팔구는 송년 모임 준비다. 지금이 딱 그때다. 동창회나 친목회, 각종 동호회는 물론 기관단체까지 이미 일정을 잡은 곳이 많다. 다른 모임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 지도 대화의 관심사 중 하나다. 행사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참고로 말해 두자면 한인회의 '동포 위안 연말 대잔치' 송년 행사는 12월 13일 일요일 오후로 잡혀 있다. 입담 좋은 한국의 개그맨 엄용수와 가수 2명이 여흥을 돋울 모양이다.
송년 행사는 경기에 민감하다. 식사 및 경품 예산을 세우고 회비를 얼마로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참석 인원 체크도 필수다. 임원들이 나누어서 연락을 취하기로 한다. 전화로, 목소리로 통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광고 얘기도 나온다. 일일이 개별 통지를 할 텐데 굳이 돈 들여 광고할 필요 있느냐는 의견이 나온다. 그래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광고하자는 논리는 단체를 외부에 알리는 일종의 세 과시이자 이미지 제고다. 대체로 광고를 싣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송년 파티는 준비부터 사실 큰 부담이 없다. 추위가 몰려 올수록 따뜻하게 정을 나누자고 모이는 자리다. 서로를 보듬고 격려하고 덕담을 나누자는 모임이다. 가치관이 다르고 성향이 달라도 첨예한 부딪침이 없어 좋은 자리다. 그런 자리를 준비하는 건 즐겁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송년 행사의 일정이 많이 앞당겨 졌다. 12월 초가 대세다. 아예 11월 말에 치르는 곳도 있다. 12월 말을 피해 시작된 이른 송년 파티가 12월 초로 집중된다. 이러나 저러나 겹치는 건 매일반인 셈인데 결과는 좋다. 진짜 연말은 가족끼리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다른 모임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 덕분에 정작 연말 기분이 저절로 나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주말은 스케줄이 비어 있다. 별도의 모임이 없으면 가족과 며칠을 오순도순 보내면 되는 일이다. 선입견이 오히려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
송년 모임을 준비하는 이 시기는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다. 독자들 중 오랫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먼저 연락을 한 경험이 있나 모르겠다. 십중팔구 의외로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지나온 섭섭함이나 쌓인 미움이 눈 녹듯 사라지고 금방 농담이 나온다. 기대 이상이다.
이맘때 호된 찬바람이 꼭 한번은 불어 단풍이 잔뜩 든 이파리들을 떨군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며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기 새로운 거라고는 자녀들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과 이를 대견해 하느라 가끔씩은 잊는 나이다. 열심히 따라다니던 아이들이 점차 따로 노는 허전함이다. 이제껏 무엇을 했나 갑갑하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고 활력소를 찾게 된다. 우리가 늘 그렇다고 믿어 온 일들이 얼마나 우릴 무료하게 만들고 '놀러 간다'는 파티조차 의무적인 출석으로 여기도록 만드는지.
단언컨대 단체의 임원이든 일반 회원이든 송년모임을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은 낙엽에 나를 투영하며 침잠하지 않는다. 조그만 변화 덕이다. 아주 작은 일,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사람에게 내가 먼저 전화해 '이번 송년 모임에 꼭 얼굴 한번 봅시다'고 말하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빈말이라도 쑥스러워 꺼내지 못했던 '한해 고마웠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는 일은 한번 해보면 별 것 아니다. 송년 파티는 준비 과정부터가 파티가 된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인회가 준비 중인 '동포 위안 연말 대잔치'에 위안이란 표현은 뺐으면 좋겠다. 시카고 한인사회에 규모가 큰 여흥 이벤트가 있을 때 마다 '동포 위안'이란 타이틀이 붙는데 모두에 예외 없는 고단한 삶이야 위무가 필요하겠지만 회비를 내는 연말파티에 위안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고 친교를 나누는 자리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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