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 전격사퇴를 발표한 이후 존 베이너 연방하원의장은 후임자를 위해 “헛간을 깨끗이 치워주겠다”고 줄곧 다짐해 왔다. 내일 퇴임하는 그는 약속을 지켰다. 연말정국을 벼랑 끝 대결로 몰고 갔을 재정 난제들을 피할 수 있도록 초당적인 예산합의안을 성사시킨 것이다.
지난 월요일 밤 백악관과 민주·공화 양당의 상하원 지도부는 2017년 3월까지 유효한 국가부채 한도 증액과 향후 2년간 800억 달러 지출을 늘린 임시 예산안 편성에 합의했다. 어제 하원을 여유있게 통과한 합의안이 예상대로 내주 초 상원에서도 통과되면, 앞으로 대선이 끝나고 차기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는 지난 몇 년 워싱턴의 고질이 되어 온 ‘국가 디폴트’ 위기와 ‘정부 셧다운’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내 권력서열 3위의 막강한 자리이면서도, 내분 심해 골치 아픈 연방하원의 “아무도 원치 않는” 의장직을 우여곡절 끝에 떠맡게 된 폴 라이언에게 이번 합의안은 베이너가 남겨준 ‘작별 선물’이자 공화당 구하기에 나선 ‘폴 라이언 보호플랜’이라고 주류언론들은 비유한다.
이변이 없는 한 오늘, 라이언은 제62대 연방하원의장으로 선출된다. 124년 만에 첫 40대 젊은 의장이 탄생하는 역사의 순간이 기록될 것이다.
헛간을 청소해준 베이너의 ‘선물’이 없었다면 라이언은 축하받을 겨를도 없이 진흙탕 예산투쟁에 돌입했어야 할 것이다. 11월3일 데드라인이 코앞에 다가온 부채한도 증액 논쟁에 시달렸을 것이고 12월11일이 시한인 임시예산안을 다시 통과시키지 못하면 또 정부폐쇄의 책임을 떠안아야 했을지 모른다. 이 골칫거리들을 베이너가 서둘러 처리해준 셈이다.
그러나 라이언은 합의안을 환영하기는 커녕 지지조차 당당하게 표시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당내 티파티 강경파의 반발 때문이다.
취임도 하기 전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부터 시작한 라이언의 합의안에 대한 첫 반응은 “(입법)절차가 혐오스럽다”는 비판이었다. 자신은 “하원을 이런 식으로 운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소수 지도부의 막후협상에 따라 일반의원들에겐 법안검토의 시간조차 주지 않고 주요이슈가 결정되는 것에 강력 반발해온 티파티 극우파를 달래는 제스처일 것이다. 그러나 합의안의 내용에 대해선 비판하지 않았고 어제 표결에서도 찬성표를 던졌다.
지난달 베이너가 사임을 발표하고 (실제론 하원 내 티파티 극우보수그룹 프리덤 코커스가 주도한 축출이었다) 유력 후임자였던 케빈 매카시 역시 프리덤 코커스의 압력으로 포기한 후 당 안팎에서 새 하원의장 0순위로 꼽혀온 라이언은 한동안 고사하다 조건부로 출마에 동의했다.
세 가지를 요구했다 : 당 전체의 단합된 지지를 촉구했고, 의장 축출을 가능케 하는 현 하원규정 변경으로 의장권한을 강화시키기 원했으며, 주말엔 아직 나이 어린 세 자녀와 시간을 보내야 하니 전임의장처럼 연중 100일씩 기금모금 여행을 다닐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원내규정 변경은 논의 자체를 연기시켜 양보했지만 나머지 두 요구는 관철시켰다. 그 자신은 공무원 가족병가법안에 반대표를 던졌으나 직장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려는 아버지의 노력에 많은 여성들이 호의를 표시했으며, 프리덤 코커스 멤버의 70% 지지표명으로 일단 당을 단합시킨 라이언은 어제 공화당 회의에서 200 대 43의 압도적 지지로 새 하원의장에 내정되었다.
28세에 하원에 첫 당선된 후 40대초에 예산위원장에 올랐고 현재 9선의 중진으로 금년초 막강한 세입위원회의 수장이 된 라이언은 민주당에서도 ‘나이스 가이’로 통한다. 소신이 확실하면서도 합의를 끌어내는 뛰어난 소통능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2012년 미트 롬니의 부통령 후보로 전국적 지명도도 다졌고 공화당의 예산안 ‘번영으로 가는 길’을 작성, ‘적자 없는 미국’의 청사진을 제시한 ‘공화당의 지성’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공화당의 ‘새 리더’ 폴 라이언 하원의장 앞날의 예보는 ‘쾌청’이 아니다. 민주당 백악관과 사사건건 맞서는 양극화 교착상태를 해소하고 통치능력 갖춘 공화당의 ‘생산적 의회’로 이끌어야 할 도전도 만만치 않지만 최우선과제는 당내 ‘시한폭탄’ 프리덤 코커스 길들이기다.
낙태와 동성결혼을 절대 반대하고 총기권리를 열정적으로 수호하는 라이언은 중도가 아니다. 감세와 적자감축, 작은 정부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선명한 보수다. 과제의 실현을 위한 방법이 실용적일 뿐이다. 티파티가 라이언의 실용전략을 따라와야 길들이기가 가능해지고 티파티 길들이기에 성공해야 베이너와는 다르게 성공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구세주’ 폴 라이언의 새 시대에 대한 공화당의 기대는 뜨겁다. 그가 당내 분열을 봉합해 의회를 안정시키고 내년 대선까지 무사히 치러낸다면 라이언은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 할 것이다.
그런데 젊고 똑똑하고 인기 높은 공화당 새 리더의 등극에 모두가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이민사회에도 별로 환영할만한 소식은 아니다. 평소 서류미비자의 시민권 취득을 공개지지 해왔던 그가 엊그제 예산 합의안 반대를 요구하는 강경파에게 대신 확실하게 약속한 것이 “공화당 다수가 지지하지 않는 이민개혁안은 처리하지 않겠다”였다.
메디케어와 웰페어의 민영화를 선호하고, 푸드스탬프와 펠그랜트 혜택을 대폭 삭감하는 균형예산 로드맵을 매년 자랑스럽게 작성해온 라이언…그의 하원이 추구하는 내일이 그리 편치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서민들을 불안케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