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은 65살이다. 충청도의 이순규(85) 할머니도, 경상도의 이옥연(88) 할머니도 전쟁 중에 낳은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북의 남편을 만나러 갔다.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에 모인 96 가족 중 부부와 자식의 한 가족이 만난 케이스는 이들 두 건뿐이었다. 65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미 많은 분들은 세상을 떠났다. 북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자란 자식 세대는 65세가 마지막일 것이다.
1950년 전쟁이 터진 직후 충청도의 새댁 이순규씨의 남편 오인세(현재 85세)씨는 훈련 받으러 간다며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경상도, 이옥연씨의 남편 채훈식(현재 88세)씨는 함께 잠을 자다가 “잠시 다녀올 게”하고 나가더니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거짓말 같은 이별들이었다.
스물 갓 넘은 아내들은 혼자 아들을 낳고 길렀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남편을 기다리며 고향땅을 지켰다. 아내들은 그때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 세월이 흘러 자신도 남편도 백발의 노인이 된다는 것, 백발이 되도록 만날 수가 없다는 것. 하지만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그리움의 한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 대못으로 박혀서 기쁠 때 슬플 때 가리지 않고 가슴을 찢어낸다는 것.
미리 알았더라면 지레 질려버렸을 삶을 견뎌낸 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기억에 생생한, 20대의 아내·남편을, 두세 살배기 아들·딸을, 10살 남짓 동생을 눈으로 찾으며 노인들은 모여 들었다. 그곳에 젊은 사람은 없었다. 아내도 남편도 아들딸도 오빠도 동생도 모두가 노인들이다. 65년의 세월이 흘렀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는 것, 피붙이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것만큼 큰 고통은 없다. 생명유지에 필요한 기본조건이 충족되고 나면 또 다른 허기로 찾아드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대상에 가서 닿고 싶은 마음, 만지고 싶은 마음, 품어 안고 싶은 마음인데 그중에서도 혈육에 대한 사랑은 본능이다. 본능이기에 속수무책으로 강력하고 질기다.
지인 중에 고향이 이북인 분이 있다. 1950년 12월 흥남부두에서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 보고 싶은 마음이란 …. 전 생명을 걸고 보고 싶지요. 아무리 잘 살아도 그래서 겉으로 행복해 보여도, 깊은 한은 없어지지 않습니다.”평양에 살던 그의 가족은 중공군이 밀고 내려와 연합군이 철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피난길에 올랐다. 온 가족이 흥남부두까지는 같이 갔는데 마침 중공군이 밀려들어 함포사격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뒤엉켰다. 13살 소녀였던 그분은 엉겁결에 미군 트럭에 오르면서 그대로 배에 탔고, 곧 이어 배는 떠났다. 뭍에 남은 가족들과 서로 멍하니 쳐다보며 손을 흔들다 보니 그것이 영영 이별이었다.
그렇게 헤어진 어머니와 형제들을 다시 만난 것은 30여년 후였다. 소녀는 이북의 가족과 친분이 있던 친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이를 악물고 공부해 대학을 마치고, 미국에 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1980년대 초 친북단체들 주선으로 이북가족 상봉 프로그램이 생겨나자 곧 바로 신청을 했다. 1984년, 마침내 어머니를 만나고 나니 평생의 한이 녹아내리더라고 했다. 혈육을 보고 싶은 마음은 본능, 먹어도 허기지고 입어도 추운 결핍의 날들이었다. 이후 그는 북한을 4번 더 방문해 가족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어머니를) 못 만났으면 나는 절반은 미쳐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물리학에 ‘양자 얽힘’이라는 현상이 있다고 한다. 과거 서로 상호작용했던 전자와 같은 작은 입자들은 멀리 떨어진 후에도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며 특별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이론이다. 1964년 아일랜드의 물리학자가 발표한 이론으로 아인슈타인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근 이를 입증한 한 실험결과가 보도 되었다.
물리학에서 다루는 극미세 입자들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의 마음의 입자라면 얼마나 맞는 현상인가. 한번 인연으로 얽힌 마음의 입자들은 아주 멀리 떨어진 후에도 같이 그리워하고 같이 슬퍼하며 상호작용을 한다.
한국 통일부에 상봉 신청을 한 이산가족은 총 13만여명. 이중 거의 절반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남은 6만6,488명 중 81%는 70세 이상의 고령이다. 남과 북의 정부는 ‘보고 싶다’는, 죽기 전에 한번 봐야겠다는 이 단순하고도 절박한 소원 앞에서 진지해져야 하겠다. 국민의 한을 볼모로 계산하고 흥정할 일이 아니다.
이 가을에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보며 살자. 보는 것도 살아있어야 가능한 일. 노부모를 형제를 친구를 … 볼 시간이 마냥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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