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전쟁’으로 불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 역사상 가장 길게 끌어 온 전쟁이다. 9.11 직후 대 테러작전으로 시작, 이번 달로 개전 15년째에 접어들면서 약 1조 달러의 경비가 들어갔고 2,400명에 가까운 미군이 전사했다.
취임 첫해인 2009년 12월, 3만명의 추가파병과 18개월 후 철군개시의 출구전략을 제시하며 오바마가 아프간 전쟁에서 약속한 것은 승리가 아니었다. 알카에다 소탕이라는 목표를 실현하는 빠르고 성공적인 마무리였다. 그 목표를 향해 신중하게(혹은 소극적으로) 정책을 조율해온 오바마는 지난해 12월만 해도 “아프간에서 우리의 전투임무는 끝나가고 있다”고 낙관했었다. 일정대로라면 오바마 대통령의 퇴임 직전인 2016년 연말이 미국의 아프간 전쟁 종전선언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상황은 오바마 편이 아니었다. 지난주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굽히고 완전 철군 연기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약 1만명의 미군을 최소한1년 더 주둔시키며 2017년 초 자신의 임기가 끝난 후에도 5,500명의 미군이 계속 주둔하도록 계획을 바꾼 것이다. 미사상 최장기간의 전쟁이 더 오래 기약도없이 이어지게 되었다.
누구보다 이 발표를 가장 피하고 싶었을 사람은 대통령 자신이었을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간 두 개의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했던 오바마에게 아프간 완전 철군 연기는 자신이 가장 원했던 외교업적의 포기를 의미한다. 미군의 해외 군사개입 종료는 그가 일관성 있게 밀어온 외교정책 목표였고 자신의 유산으로 남기고 싶었던 최우선 과제였다.
군 수뇌부의 건의와 아프간 정부의호소에도 불구하고 지난 여름까지 철수플랜을 고수했던 그가 현실에 굴복한것은 더 나은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몇 가지 요소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오바마의 발목을 잡은 가장 직접적 계기는 탈레반의 급격한 세력 확대다. 탈레반의 기세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아프간 정부군보다 훨씬 적은 숫자로 지난달북부의 주요도시 쿤두즈를 2주간 점령한 탈레반은 쿤두즈에서는 미군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에 밀려 퇴각했지만 이미 30여개 지역을 장악한 상태다. 아프간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장 무서운 기세로 재부상 중인 탈레반을 맞서 제압하기엔 아프간 정부군은 아직 너무 허약한 것이 현실이다.
‘제2의 이라크 사태’에 대한 우려도컸다. 2011년 단행한 이라크 철군 강행이후 초래된 종파분쟁의 혼란사태와 치안공백을 틈 탄 극단파 테러그룹 이슬람공화국(IS) 발호 등의 악몽이 아프간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정부가 취약한 곳에서 장악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 IS는 실제로 아프간에서도 수익성 높은 아편무역에 눈독을 들이며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하고 있다.
미군의 지원이 없다면 아프간 정부군은 곧 무너질 것이라는 평가도 확실해졌지만 아프간 정부의 계속 주둔 요청도 오바마의 마음을 돌리는데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취임 1년째인 아프간 민주정부의 현 아쉬라프가니 대통령은 부패했던 전임 카르자이보다 훨씬 신뢰할 수 있는 협조적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반전의 기수’였던 대통령의 내키지 않는 철군연기 심정을 헤아려서인지 정치권의 반응은 조용~하다. 전쟁은 지지해도 오바마는 지지하고 싶지 않은 공화당과 전쟁은 반대해도 오바마는 반대하고 싶지 않은 민주당의 의중이 같은 침묵의 결과를 빚어낸 셈이다. 그러나 요란스럽진 않아도 우려 섞인 지적은 나오고 있다.
보수 쪽에선 소규모 주둔군으로는 탈레반, 알카에다, IS 진압에 역부족이라고 우려하고 진보 쪽에선 목표도, 시한도 분명치 않은 인명과 재정 낭비의 계속이라고 지적한다. 뉴욕타임스는 지금 당장 탈레반 진압과 IS 위협에는 도움 될 수있어도 철군연기가 전세를 바꿀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경고하고, 월스트릿저널은 전쟁이 끝나고 62년이 지난 현재도 한국에는 2만9,000명 미군이주둔해 동아시아 평화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오바마의 ‘소심한’ 지원을나무란다.
언제, 어떻게 아프간 전쟁을 끝낼 것이지는 이제 차기대통령에게 넘겨졌다. 이라크와 아프간 2개의 전쟁 종식을 주요공약으로 내세우고 백악관에 입성했던 오바마는 오히려 시리아 하나를 더해 3개의 전쟁을 후임자에게 물려주게 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셋 모두 끝이 안 보이는 ‘네버-엔딩’ 전쟁이다.
아무리 원해도 종전 선언만으로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은 절감했을 것이다. 시작하긴 쉬워도 끝내기는 어려운 게 전쟁이라는 것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가끔 생각하며 후회하고 있을까.
기약 없는 전쟁에 끌려 들어가는 미국인들의 의구심이 LA타임스의 한 독자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 “아프간은 미국이 처음 도착했을 때도 혼돈상태였고 현재도 혼돈상태이며 미군의 철수 후에도- 지금이건 5년 후이건 - 혼돈상태일 것이다”
시간이 아프간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할 텐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는 그의 질문에 아직은 아무도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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