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때 이 칼럼을 통해 한마디 조언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아버지가 쌓은 성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공식 출범하기 전인데도 인사 스타일에서부터 내세우는 구호에 이르기까지 구시대로의 회귀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기까지는 아버지의 후광에 절대적으로 기대야 했을지 몰라도 대통령이 된 후 국가를 이끌어가는 데는 과거, 특히 독재개발시대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시대가 바뀌었고 그런 시대가 요구하는 철학 또한 크게 달라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안 좋은 예감은 항상 현실이 되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효녀 박근혜’는 아버지의 유산으로부터 벗어나기는커녕 권좌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이것에 더욱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가 곧 지고의 선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일본 군국주의 교육을 받은 그의 아버지 믿음이기도 했다. 이런 가치가 사회를 지배하면 개인의 기본권과 다양성이라는 민주적 가치는 뒤로 밀리고 치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반복적으로 이런 소신을 드러내왔다.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국기하강식 장면에 대해 애국심 운운하며 한마디 하자 관료들은 곧바로 국가하강식 부활을 검토하고 태극기 게양 캠페인을 벌이는 등 법석을 떨었다. 내용과 수순 모두 과거 독재시대의 판박이다.
그러나 임기 전반기까지는 이런 욕망을 어느 정도 억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 또 슬프게도 잇달아 터진 국가적 참사와 재해 때문이었다. 그러니 ‘억제했다’기보다 ‘억제됐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국가의 존재 이유와 정부 무능에 대한 질타가 터져 나오면서 대통령은 자신의 욕망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계속된 메르스 사태도 한몫 했다.
그러나 이런 참사와 재해가 국민들 기억에서 점차 희미해지고 지지율이 조금 회복되자 대통령은 ‘아버지 명예회복’이라는 자신의 개인적 아젠다를 ‘돌격 앞으로’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아무 것도 거칠 것 없다는 태도이다. 그 정점에 놓여 있는 것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이다.
교과서 국정화는 보수진영에서조차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온 사안이다. 그만큼 비상식적인 조치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진 후 집권당에서는 어떠한 이견도 나오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의원총회 후 일사분란하게 국정화 찬성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광경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성과 상식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의 망령이 나라를 휘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대통령은 정신분석학에서 ‘부성콤플렉스’라 부르는 증세를 그대로 나타낸다. 아버지를 현실적 존재, 그러니까 약점과 장점을 모두 가진 보통의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대적 힘을 가진 존재로 계속 받아들이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보통사람들은 성인이 되면 이런 콤플렉스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아버지를 계속 신화적 존재로 간직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적은 야당이나 북한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라고 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아버지의 성에서 나오지 못한 채 지금처럼 갇혀 있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자신과 국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임기 전망은 어떨까. 한 사람의 정신세계는 쉬 바뀌지 않는다. 게다가 권력을 쥔 기간이 길어질수록 시야는 더욱 좁아진다고 하지 않는가.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아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암담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버지에 억압된 대통령, 그리고 그 대통령에 억압된 여당 정치인들. 한 개인의 퇴행적 사고 때문에 온 나라가 갈등에 휩싸인다는 건 비극이다. 박대통령이 계속 아버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의 집권 5년은 21세기였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한국사회가 퇴행했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그것이 국정교과서만 아니라면 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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