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신드롬으로까지 이야기 됐다.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에게 송곳 질문을 날렸다. 그가 주장하는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은 사실과 다르다’며. 이보다 다섯 달 전에는 “왜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지 않느냐”며 아베 일본총리에게 따져 물었다.
조셉 최. 하버드 대학 경제과 3학년.
그 발언의 주인공은 코리안 아메리칸 2세다. 그 광경이 유튜브로 뜨면서 조금 과장해 표현하면 한국에서는 난리가 난 모양이다.
감사하다. 멋지다, 자랑스럽다 등의 찬사가 소셜 미디어에 넘쳐난다. 한마디로 조셉 최야 말로 진정한 애국자라는 것으로 일종의 신드롬 현상까지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그 조셉 최 스토리를 전하는 미국 언론의 보도는 그런데 사뭇 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
“트럼프가 그 아시안 아메리칸 대학생에게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 분위기는 순간 상당히 딱딱해졌다.”
“아니다. 텍사스에서 태어났고, 콜로라도에서 자랐다고 했을 때 분위기는 바뀌었다. 트럼프는 어색한 미소를 날렸고 청중은 그 학생에게 환호로 응답했다.”
허팅턴 포스트의 보도다. 그 포인트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아시안 아메리칸은 영원한 외국인으로 취급을 받는다’-. 거기에 앵글을 들이댄 것이다.
아시아계 학생이 돌연 발언자로 나서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돈 것부터가 그렇다. 그 질문을 중간에 끊고 ‘한국에서 왔느냐’고 한 트럼프의 무례한 발언도 그렇다. 그리고 미국서 태어나 자란 미국임임을 밝혔을 때 터진 환호는 일종의 안심이랄까 그렇게도 들리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동시에 뭔가의 다소 상충되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이도 들린다. 애국심, 내셔널리즘 등의 단어가 오버랩 되면서.
한국인 2세임을 잊지 않고 지내왔다.
조셉 최 본인의 말이다. 그러니까 트럼프를 향한 그의 돌직구 질문은 한국인으로서 당연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 발언에서 새삼 한 가지 단어가 떠올려진다.
Long Distance Nationalism. 번역하면 ‘원거리 민족주의’다.
이민을 간다. 그리고 2세, 3세로 이어진다. 그런데도 그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
한 민족 집단 고유의 공동체 의식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떠나온 조국의 본국인보다도 더 전통에 집착한다. 더 근본주의적 입장을 고수한다.
미국의 아일랜드인, 독일의 터키인 등 이민그룹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런 유형의 민족주의를 베네딕트 앤더슨은 원거리 민족주의로 명명했다. 그러니까 한국인 이민 역사가 2세, 3세, 심지어 4세로 이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 조셉 최 신드롬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뒤이어 전해지는 뉴스들도 그렇다. 지난 10일 애틀랜타의 트럼프 유세장에서의 한인 여고생 2명의 반 트럼프 시위가그것이다. 브라 차림의 한인여고생 2명이 ‘트럼프는 쓰레기’란 욕설로 쓰여진 표어와 함께 시위에 나섰다가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야유를 받기까지 했다.
특히 눈을 끄는 뉴스는 전국지인 USA투데이의 보도다. 강정호를 부상시킨 시카고 컵스의 내야수 크리스 코클란이 한국인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도에서 어른거리는 것은 또다른 민족주의의 얼굴이다. 뭐랄까. 희생자 의식 민족주의라고 할까.
이스라엘 사범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대학생의 80%는 이스라엘인의 정체성을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동일시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피해자 의식에서 도출된 것이 집합적 무죄(collective innocence)와 집합적 유죄(collective guilt) 논리다. 피해자였던 유태인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만 무죄다. 반면 독일인은 독일인이라는 이유로만 유죄다. 그 같은 희생자 의식 민족주의는 때문에 가상의 가해자에 대한 폭력적 응징을 정당화하기 쉽다.
한국인에게 적용할 때 그 집합적 유죄대상자는 일본인이다. 반미주의자 입장에서는 미국인이고. 코클란 살해 위협뉴스는 그래서 ‘혹시…’하는 불안감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민의 나라다. 때문에 미국에는 내셔널리즘이라는 감정이 없는 것일까. 전 사회에 내셔널리즘이 가장 널리 팽배해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게 포린 폴리시지의 지적이다.
이 미국의 내셔널리즘은 아주 특이하다. 민족의 우위성 등에 기반을 둔 게 아니다. 정치적 이상(ideal)에 바탕을 두고있다. 그리고 미국의 내셔널리즘은 자발성을 근간으로 한 시민사회에 바탕을 둔 내셔널리즘이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미국이 위협을 받는다. 미국인들은 그러면 이를 미국 내지 미국인보다는 미국적가치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한다. 그 내셔널리즘을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거시즌, 특히 대선 시즌에는 상황이 다르다. 내셔널리즘은 곧잘 정략에 동원된다.
2016년 미국의 대선 정국에서 과거와는 어딘가 과거와는 다른 현상이 감지된다. 내셔널리즘이 난무하면서 ‘한국 때리기’가 유행을 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트집 잡기는 더 이상 트럼프의 전유물이 아니다. 젭 부시도, 마이크 허커비도 그 대열에 껴들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도 가세했다.
앞으로도 1년 이상 이어질 미국의 대선 레이스. 뭔가 자꾸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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