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열도 종파도 색깔도 없는 아프리카의 경이
우후루 봉 최선교사와
그러나 마지막 날은 가이드들이 우리 짐을 메고 산행을 시작한다. 나는 킬리만자로의 산행을 준비하면서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4년 전에 허리하반부 수술을 했다. 출발하기 몇 달 전에 담당의사에게 가서 수술한 부분을 사진 찍어보았으나 이상은 없었다. 출발 1개월 전에 오른쪽 발목에 통증을 느껴 사진을 찍으니 발목 인대 한곳이 스프레인 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을까 하다가 혹시 잘못 건드렸다가 더 도져 여행을 하지 못할까 두려워 치료약속을 취소했다. 걷는데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제일 걱정되는 것은 이상 체질로 가끔 엄습하는 한기증이다. 킬리만자로의 정상일기는 예상하기 어렵다. 입산 입구는 열대기후이지만 정상에서는 북극지방의 날씨다. 추울 때는 정상은 화씨 영하 20도 이하 내려간다. 한기증이 엄습하면 산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자정이 되어 일행은 어둠속을 헤치고 산으로 향하였다. 지금까지는 내가 선두에서 걸었는데 이제 부터는 안내원의 뒤를 따라야만 했다. 나는 멕스를 따르고 내 뒤에 최선교사 제일 뒤에 윙고 순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밤이기 때문에 가이드의 안내하는 길로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비와 눈을 걱정했는데 쾌청한 날이다. 많이 끼어 입은 옷과 험한 비탈을 올라가는 것 때문인지 춥지도 않았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빛났다. 나는 눈의 카디락 수술을 3년 전에 받았기 때문에 야간에는 먼 곳의 빛이 반사된다. 그래서 별들이 크게 보이고 반사한다. 올라가면서 몇 번이나 속았다. 저기 밝게 비치는 곳이 휴게소면 좋을걸 하고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몇 초라도 쉴 수 있는 휴게소는 없었다. 봉우리 하나를 올라가면 또 봉우리가 있다. 그런데 가이드는 트레킹하는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강행군이다. 좀 쉬다 갔으면 하는 생각은 여러 번 했으나 쉬자고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David Batzofin기자가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한 후 기고한 글에서 “우리의 정상시도가 야밤에 시작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만일 내가 우리들이 올라가는 것을 볼수 있었다면 아마 나는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라고 했다. 왜 하필 보이지 않고 추운 밤중에 마지막 정상을 가는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 수가 있는 것 같다.
보이는 것도 없고 볼 수도 없이 올라가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전쟁 때 군인들이 밤중에 행군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 같다. 종다리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몇 시간을 걸은 후부터였다. 이 통증은 증상에 올라갈 때까지 계속되어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힌 것은 졸음이다. 수면제를 먹었기 때문에 약기운이 그대로 남아있어 계속 졸음이 왔다.
나를 안내하는 가이드는 “파파 웨이크 업”하고 여러 차례 일깨웠다. 군인들이 전쟁에서 자다가 적의 흉탄에 맞아 전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졸다가 넘어지면 계곡으로 미끄러져 내려 갈 수도 있으며 바위에 넘어질 수도 있다. 수면제를 먹은 것을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정상에 올라가기 마지막 몇 시간 동안은 발걸음을 띨 때마다 숫자를 세어 100을 10번 만들어 1,000까지 만들려고 여려 차례 시도했다. 그러나 천까지 가기 전에 잊어버리곤 했다. 그래도 계속 숫자를 세면서 시도했지만 틀리지 않고 1,000까지 정확하게 간 것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아마도 하나도 정확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최선교사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었다고 하산한 후 술회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별들은 총총히 빛났지만 달빛은 보이지 않는다. 달빛이 있었다 하더라도 내가 앞만 보고 걷어서 달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달빛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가이드를 따라 걷기 때문이다. 길은 바위, 자갈, 모래, 흙이라 미끄러지면 절벽으로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해발 5,685m 길만(Gilman)포인트까지 4Km를 걷는데 보통 6시간 거리지만 그곳에 도착하는데 7시간은 걸린 것같고 해는 이미 동천에 떠 있었다. 우후루 정상에서 해가 솟는 것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는 해맞이를 길만 포인트에서 한 것이 되었다. 길만 포인트와 우후루 정상사이에 있는 스텔라(Stella) 포인트까지는 불과 500m이다. 30분이 일반적인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스텔라 포인트에서 우후루 피크까지도 500m 거리다. 위로 쳐다보니 가까워 보이고 몇 분 안에 갈 것 같은 기분이다. 밤에는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했는데 날이 밝고 보니 앞에 보이는 험한 길을 보니 발걸음이 더욱 무겁다.
졸음은 몇 시간 전에 없어졌지만 다리의 통증은 아직 남아있다. 한참 걷다가 보니 최선교사 팀이 보이지 않는다. 첫 번째 같은 허트 막사에서 있었던 런던에서 온 두 남녀는 우리보다 먼저 떠났는지 이미 내려오고 있었다. 멕스는 나 홀로 올라가도록 하고 내려갔다. 마지막 수백 미터의 길은 숨도 가쁘고 종아리도 아프고 발걸음 띄기가 어려웠다. 열 발자욱 걷고 1-2초 쉬고 이것을 반복하면서 드디어 아프리카의 최고봉 우후루 정상에 도착했다. 최선교사와 두 가이드도 곧 뒤따라 왔다.
공원당국이 발행한 등반증서에 도착시간을 아침 9시20분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키보를 떠난 지 9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호롬보 허트에서 전날 아침 7시에 출발, 이날 아침까지 26시간 동안에 14시간 이상을 산에서 헤맸다. 정상에 있는 두 팻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5,895m, 19,341피트의 우후루 봉에 와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최고봉, 세계에서 가장 높은 후리스탠딩 산, 세계에서 가장 큰 화산의 하나, 세계의 유산이며 아프리카의 경의.”
기온은 차가워도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다. 정상은 눈과 얼음이 없는 평평한 작은 광장이지만 바로 옆에 거대한 빙하가 넓게 산 둘레에 뻗쳐있다. 정상 바로 아래에 1.3.km의 거대한 휴화산의 분화구가 있다. 멀리 서쪽에 킬리만자로의 두 번째 섯밑 봉우리 마웬 봉이 신비롭게 서 있다. 완만하게 넓게 뻗어 있는 산 아래의 모습은 거대하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평화로운 느낌이다. 여기에는 전쟁은 물론 없다. 분열도 없으며 종파나 색깔이 없다.
킬리만자로에 대한 어느 산악인의 다음의 글은 마지막 코스에 대한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마지막 날 밤 (Summit Night) 도전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어느 경우에는 절대적인 지옥이다. 고도를 올라간다. 이것은 당신의 테스트다. 8시간의 수직으로 올라가는 고통, 모래나 루즈(loose)된 바위에 미끄러져 내려간다. 동행자와 말은 전혀 하지 않으며 거친 호흡, 밤하늘을 채우는 것, 춥고 어둠 속에서 움직인다. 당신이 하는 것에 대하여 초점을 맞춰라. 중요한 것은 한 번에 한 발자욱 씩 걷는 것이다. 당신의 결심, 성격, 정신을 시험하는 날이다.“
(4일 동안 힘겹게 오른 킬리만자로를 스위스인인 산 안내자 Karl Egloff 는 2014년 8월 13일 6시간 42분에 올라간 기록을 세웠다. 프랑스인 Valtee Daniel은 87세의 나이로 최고령자의 기록을 남겼다. 제이 이는 한국인으로서는 75세인 내가 최고령이라고 말했지만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다. 최홍규 박사는 자신이 탄자니아에 수백 명의 한국선교사 중 아마도 처음으로 정상에 올라간 선교사라고 생각했다. 사실 선교사들이 이곳에 오기는 힘들다. 트레킹도 쉽지 않고 비용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15분 정도 머물다가 키보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가이드들은 내려오는 것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계속 걷도록 재촉했다.
올라갈 때 9시간 이상 걸렸던 6km 거리에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아 오전 12시 전에 키보 허트에 도착했다. 키보에서 몇 시간 휴식하고 점심 후 호롬보로 하산하여 그곳에서 1박하고 산행 출발지점이었던 마랑구로 가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몸도 피곤하고 잠도 오고해서 점심을 거르고 두 시간 정도 잠을 잤다. 잠을 자고 나니 피곤이 풀리고 기분도 좋아 하산하는데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6월 16일 (화요일), 킬리만자로의 마지막 밤
5박6일의 산에서 마지막 날이다. 호롬보에서 산 입구 마랑구까지 19km는 지프차로 내려오도록 주선했다. 여행사에서 우리에게 특별 배려를 한 것이다. 호롬보와 우후루 정상 간에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없다. 오전 10시 30분에 4휠 지프차가 도착했다. 내가 운전석 옆에 앉고 최선교사와 두 가이드는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앞자리에서 경치구경을 톡톡히 할 수 있었다. 사실 자동차의 속도는 걸어내려오는 것 보다 크게 빠른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도로의 경사와 바위와 자갈길이라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호롬보 허트 해발 3720m 부근의 킬리만자로는 작은 나무들, 야생식물, 야생 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점점 내려오면서 생태계가 바뀌어 거대한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서있다. 과거에는 화목과 건축재로로 벌목을 했으나 지금은 벌목이 금지되고 있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1시간 정도 하산하니 차를 가로 막는 공원직원이 있다.
우리가 탄 차는 내려갈 수 없다고 한다. 공원관리인들이 일하면서 거주하는 길옆의 건물로 이동하여 다른 차를 기다렸다. 이곳에는 남자 1명과 여자3명이 일하고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남자와 가족이야기를 나누다가 부인이 몇이냐고 물었다. 그는 돈이 없어 한 부인도 힘들게 구했다고 농담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불룩 나온 배를 만지면서 “당신은 부자인데!”하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배가 나오면 사장이라고 한때 불렀다고 설명하여 모두가 웃었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 다른 지프차가 왔다. 우리가 마랑구에 있는 여행사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가 지나서였다. 제이 김의 현지 파트너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다. 바나나 나무가 울창한 숲속에 세워진 2체의 건물이다. 1주일 만에 처음 샤워를 하니 기분이 상쾌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였으나 새벽 일찍 모쉬에서 버스로 다음 행선지로 떠나야하기 때문에 점심을 먹은 후 곧 모쉬에 있는 제이 김의 집으로 왔다. 저녁 식사 때 고등어찌개가 주 반찬이다. 1주일간 별 맛없는 음식을 먹었던 터라 별것 아닌 고등어찌개가 진미였다. 저녁 식사 후 킬리만자로공원당국이 발행한 등반증서 322,230호를 제이 이로부터 받았다. 5박6일의 킬리만자로 등반의 막이 내리는 순간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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