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열패감에, 지괴감이 묻어난다. ‘이러다가 우리만…’하는 소외감마저 행간 행간에서 느껴진다.
노벨상 수상자가 잇달아 발표됐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마침내 타결됐다. 지난 주간에 날라든 뉴스들이다. 그 소식을 전하는 한국 언론들의 모습이 그렇게 비쳐지는 것이다.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일본인은 21명이 됐다.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데. 그 ‘21 대 0’의 상황을 전하면서 한 신문은 어쩔 수 없는 열패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 열패감은 TPP가 마침내 타결됐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소외감으로까지 번진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외친다. 등거리 외교를 말해야 세련되어 보인다. 그러면서 일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형 대세’였다.
그러다가 막상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세계최대의 경제블록인 TPP가 한국은 배제된 채 태동되자 소외감에 경악반응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외교의 실기와 전략부재가 가져온 재앙이다’- 국회에서 쏟아지는 질타다. 뭐랄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고 할까.
TPP는 한국 정부 주요관심사가 아니었다. TPP에 한국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소수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막상 세계 GDP의 40%를 차지하는 메가 자유무역협정‘이란 실체가 드러나자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새삼 한 가지 질문이 떠올려진다. ‘TPP가 도대체 뭐기에’하는 질문이다.
하드 파워(Hard Power)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군사력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 대안으로 떠올려지는 것이 소프트 파워(Soft Power)다. 그렇지만 소프트 파워도 한계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한 국가나 국가블록이 혼자 국제적 어젠다를 주도하는 정치, 경제적 레버리지(leverage)를 행사할 수 있던 시대는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다.
상호의존의 시대다. 그렇지만 한 국가나 정부는 다른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이 하나의 창조적인, 새로운 형태의 파워다. 그 파워를 ‘스탠다드 파워’(Standard Power)로 일부 정치학자들은 부르고 있다.
스탠다드 파워가 새삼 주목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새로운 스탠다드(standard)제정의 폭발시기라고 할까. 다시 말해 치열한 국제표준 전쟁의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게 오늘날의 세계기 때문이다.
표준경쟁, 혹은 표준전쟁의 개념은 본래 민간 기업들이 시장에서 벌이는 기술표준 경쟁을 의미했다. 국제 정치에서는 그 의미를 넘어선다. 표준전쟁은 총칼 없이 싸우는 일종의 세계패권경쟁으로 단순히 기술을 넘어 제도와 이념, 정체성 차원으로까지 확산돼 전개되고 있다.
표준전쟁은 중국의 부상과 함께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와 ‘베이징 컨센서스’의 대립 양상으로.
이 측면에서 TPP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진단이다. 단순한 동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통상질서만 새롭게 규정하고 있는 게 아니다. 21세기의 통상질서는 물론, 새로운 지정학, 안보까지 아우르는 메이드 인 글로벌 시대의 새로운 시스템구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서방의 가치관에 입각한 스탠다드 파워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스탠다드, 표준이라는 것이 그렇다. 한 번 세워지면 뒤집기가 어렵다. 산업세계의 경우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우수한 제품을 생산한 측보다 사실상의 표준을 장악한 측이 산업의 실질적인 주도권을 장악해왔다. 그리고 그 표준전쟁에서 패배한 낙오자는 항상 비싼 대가를 치러왔다.
21세기의 통상질서, 어쩌면 더 나가 국제질서를 좌지우지할지도 모를 TPP참여를 일찍부터 제의 받았다. 그것도 수차례. 그런데 번번이 걷어찼다. 그리고 이제 와서야 뒤늦게 허둥대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것인가.
“시끄러운 소수의 표밭 관리에만 신경을 썼다. 외교도, 통상정책도 표퓰리즘의 볼모가 되어버렸다. 정부까지 나선 지나친 일본 때리기가 그 한 예다. 게다가 광우병 소고기 파동의 전철을 받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메가 FTA시대, 스탠다드 파워 시대의 전개를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원칙이 없다. 단기적 이해득실보다 전체 국가 이익과 동북아 안보지형까지 고려하는 전략 같은 것은 더 더욱 없었다. 거기서 비롯된 오판의 결과다.”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지나친 중국눈치 보기가 아니었을까. 중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에 올인 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중국이 주창하는 역내경제동반자협정(RCEP)에만 관심이 있었다. 한마디로 ‘중국만이 살길이다’가 박근혜 정부의 통상정책이었던 것이다.
중국에만 매달린 인상을 주는 대한민국. 그 모습이 어쩐지 위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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