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도널드 트럼프의 대항마로 거론되던 벤 카슨이 잇단 극단적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얼마 전 “무슬림 대통령에게 미국을 맡길 수는 없다”는 말을 해 진보진영과 이슬람 단체들의 반발을 샀던 벤슨은 지난주 미국에서도 나치 정권의 히틀러가 나올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또 한 차례 구설에 올랐다. 그는 “미국에도 히틀러를 닮은 사례가 꽤 있다”고 말함으로써, 본인의 극구 부인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를 겨냥한 비판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벤 카슨이 누군가. 소아 신경외과 전문의인 그는 가난한 흑인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 미국 최고 병원으로 꼽히는 존스홉킨스대 의대 소아 신경외과 책임자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역경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의 스토리는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최근 논란들은 이런 감동을 크게 희석시켜 버린다.
성공한 흑인 보수주의자들은 종종 백인 보수주의자들보다 한층 더 강경하고 극단적인 견해들을 드러내곤 한다. 카슨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의사이다. 학식도 풍부하고 대단히 점잖아 보인다. 개인적인 매력이 있다. 하지만 그가 드러내는 일부 편향된 견해는 공직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그가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은 정치가 아니라 의술이다.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하는 것과 사고의 균형은 별 상관관계가 없다. 우리 주위에는 똑똑하다는 평판을 들으면서도 특정 이슈와 사안에 대해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어처구니없는 견해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머리 좋은 사람이 극단적 사고의 틀에 갇히면 여기서 헤어 나오기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어렵다.
저널리스트 크리스 무니는 이런 사람들을 ‘똑똑한 바보들’이라 부른다. 유식한 사람들이 편향에 빠지면 이것을 바로 잡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교육을 많이 받은 머리 좋은 극단주의자들은 다른 이들이 깨뜨리기 힘든 강력한 자기 확신에 차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외국태생 무슬림이 맞다”는 발언을 해 후폭풍을 맞은 트럼프도 이런 부류의 인물이다. 똑똑하지 않고서는 ‘트럼프 그룹’ 같은 비즈니스 제국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상식을 의심케 하는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이런 ‘똑똑한 바보’ 현상은 소수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무슬림이라는 주장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지난 2009년과 2010년 조지워싱턴대학이 실시한 조사에서 이 터무니없는 주장에 대한 믿음은 교육을 덜 받은 공화당 지지자들보다 교육수준이 높은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더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교육수준과 사고의 균형 간에는 별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관계없는 것까지는 좋다. 또 개인의 신념이나 생각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인물들이 다른 이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오르거나 권력을 갖게 된다면 그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회적 해악이 평범한 극단주의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니 말이다.
한국의 모 방송국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원 고영주 이사장이 지난주 국감장에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공산주의자라는 신념에 변함이 없다”고 밝혀 물의를 빚고 있다. 현직 야당대표를 거리낌 없이 공산주의자라 지칭하는 그의 극단적 편향에 섬뜩함마저 느끼게 된다. 고 이사장은 공안검사 출신이다. 그가 공안사건들을 어떻게 다뤄 왔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판결봉을 손에 쥔 일베 판사, 대학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극단적 생각을 강요하는 대학교수들, 시대착오적 논리로 증오를 부추기는 논객 등 한국사회 곳곳에는 이런 폭탄 같은 존재들이 널려 있다. 이들이 갖는 힘과 영향력은 흉기가 된다. 한국사회에 가장 위협적인 ‘외부의 적’을 북한이라고 한다면 좋은 머리로 공적 영역에서 출세한 극단주의자들은 갈등을 증폭시키고 구성원들을 분열시키는, 북한 못지않게 위험한 ‘내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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