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
미국의 전설적인 힙합 그룹 `N.W.A’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Straight Outta Compton)(감독 F 게리 그레이)은 1일까지 북미에서만 1억3700만 달러(약 1630억원, 제작비 약 330억원)를 벌어들였고(박스오피스모조 참고), 역대 북미 개봉 `음악 관련 전기영화’ 흥행 1위에 오른 작품이다. 10일 한국내 개봉을 앞둔 이 영화는 이런 배경과 함께 힙합이 대세인 한국음악계의 흐름과 맞물려 한국 영화 관객에게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토록 궁금증을 유발하는(특히 힙합을 즐겨듣는 관객이라면)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은 어떤 영화일까. 최근 시사회를 연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은 두 가지 예상을 비껴갔다. 하나는 전기영화라는 측면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 평범하고, 매우 관습적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영화 속 음악이 예상보다 훨씬 강력해 관객을 일으켜 세워 팔을 흔들게 할 정도라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청년 `닥터 드레’의 관심은 오로지 음악뿐이다. 힙합에 심취한 닥터 드레의 목표는 좋은 음악을 만들어 성공하는 것. 하지만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또 다른 청년 `아이스 큐브’의 관심도 오로지 음악이다. 랩에 미친 그는 노트와 펜을 들고 다니며 생각날 때마다 라임들을 적어나간다. 더이상 이대로 인생을 낭비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닥터 드레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모아 음반 작업에 들어간다. 닥터 드레, 아이스 큐브, 이지-이, DJ 옐라, MC 렌이 모인 그룹 N.W.A(Niggaz With Attitude)다. 이들은 자신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이른바 `갱스터 랩’ 앨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을 발표하며 순식간에 미국 음악계를 평정해 나간다.
간단히 말해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은 `N.W.A’라는 힙합 그룹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이 영화는 닥터 드레나 아이스 큐브 등 유명 힙합뮤지션 개인에게는 관심이 없다. 1986년 N.W.A를 결성하고, 1987년 루스러스 레코즈(Ruthless Records)를 설립한 뒤, 1988년 희대의 명반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멤버의 잇따른 탈퇴로 그룹 결성 3년 만인 1989년부터 점차 무너지기 시작해 1991년 완전히 해체된 후 1995년 리더였던 이지-이가 에이즈로 사망할 때까지를 그린 게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이다.
이 영화의 강점은 역시 음악이다. 가장 최근 국내에서 성공을 거둔 `비긴 어게인’이 `마룬5’의 보컬 애덤 리바인의 간드러진 가성(`로스트 스타(Lost Stars)’)에 기댄 작품이라면, `스트레이트…’는 정반대로 강력한 비트와 그 위로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랩핑의 터프함으로 승부한다. `8마일’이 이스트 코스트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에 조금 더 기댄 작품이라면, `스트레이트…’는 웨스트 코스트 힙합이 가진 넓은 스펙트럼을 적극 활용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어떤 장르보다 신날 수 있고, 때로는 어떤 음악보다 우울할 수 있는 힙합을 영화는 극의 흐름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해(특히 N.W.A가 결성돼 성공을 거두기까지)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압권은 역시 N.W.A의 디트로이트 공연 장면이다. 관객의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게 한 뒤에 그들의 대표곡인 `Fxck tha Police’의 첫 소절“Fxck tha Police"가 아이스 큐브의 입에서 나오고, 강렬한 비트와 함께 관중 모두가 힘차게 팔을 흔드는 장면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힙합영화답게 멤버들 간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방법으로 디스전을 선택한 것도 인상적이다. 서서히 파국으로 치닫는 아이스 큐브와 이지-이의 적대적 관계를 음악으로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건 힙합에서만 가능한 부분이다.
`스트레이트…’는 음악영화로서 많은 장점이 있지만, 전기영화로서는 큰 매력이 없다. 영화는 초중반부까지 관객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데 성공하지만, 그룹이 해체 수순을 밟고 멤버들이 각자의 길을 가는 과정이 전개되는 후반부에 급격히 동력을 잃는다. 열정과 패기로 뭉쳐 거대한 성공을 거두고 결국 돈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제갈 길을 가다가 다시 한 번 시작해보자며 뭉치는 류의 이야기는 장르 불문 끊임없이 반복되는 클리셰다. 긴 러닝타임(147분)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지만 그레이 감독이 택한 평범한 연출 방식이 N.W.A라는 존재를 얼마나 명확하게 관객에게 전달했는지는 의문이다.
`스트레이트…’의 가장 아쉬운 부분은 N.W.A의 저항정신을 표현하는 지점이다. 영화에는 근원적인 인종차별, 그 인종차별에서 발생하는 흑인에 대한 경찰의 차별대우, 그들의 현실적인 랩 가사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발, 표현의 자유 등 중요한 키워드들이 등장한다. 갱스터랩 혹은 리얼리티랩을 만들어낸 N.W.A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이 주요 키워드들을 그레이 감독은 그냥 짚고 넘어가는 데 그쳐 좀더 입체적일 수 있었던 영화의 차원을 한두 단계 낮추는 결과를 만들고 만다(첫 편집본의 러닝타임은 210분이었다고 한다. 이 분량으로 보면 N.W.A의 정체성이 더 명확하게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은 장단이 분명하다.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데 이견은 없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 진짜 힙합이다. 힙합예능프로그램 `쇼미더머니’를 보다가 `스트레이트…’를 본다면, 그 TV쇼가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흑형들의 `스웩’(swag)이 폭발하는 게 이 영화다. N.W.A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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