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물새 한 마리 떨어진 듯, 어린아이가 누워있다. 찬 바닷물에 몸을 맡긴 채 아이는 모래에 얼굴을 묻고 엎어져있다. 빨간 티셔츠에 감청색 반바지, 앙증맞은 운동화. 아이는 고요했다.
지난 3일 아침 6시, 터키 북부 휴양지인 보드룸 해안에서 닐루페르 데미르라는 여기자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터키의 한 통신사 기자인 데미르는 그리스로 탈출하는 난민 취재를 위해 이름 아침 바닷가에 나와 있었다. 보드룸은 에게해 건너 그리스의 섬들과 가장 근접한 곳이어서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는 난민들의 집합소가 되고 있다. 연안 유람선으로 쓰이는 고무보트 딩기에 의지해 바다를 건너는 모험이 매일 일어나는 곳, 보트가뒤집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장된 비극의 출발지이다. 그래도 육로에 비해 단속이 느슨해서 중동 탈출을 시도하는 난민들은 계속 몰려들고 있다.
그 아침 해변을 둘러보던 그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아이의 주검이라는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곧 이어 터키 해안경찰이 나타나 아이를 안아 올렸다. 사진이 터키신문에 보도되자, 이를 한 인권단체 대표가 SNS에 올리면서 에게해 외딴 해안에서 일어난 비극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주인공이 세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라 쿠르디라는 사실을 이제 우리모두는 알고 있다. 그리스로 탈출하려던 그의 가족 4명 중 3명이 익사하고 아빠인 압둘라 혼자 남았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가 엎어져있던 부근에서 엄마와 5살짜리 형의 주검도 발견되었다.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아이의 주검 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있다. 지구 저편, 우리와는 무관한 사람들의 비극으로만 알던 것이 우리의 비극으로 바짝 다가드는 충격이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는 가만큼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요소도 없다는 것을 시리아를 보면 알 수 있다. 시리아국민들이 바로 국경 너머 터키나 레바논, 요르단에서만 태어났어도 삶이 이처럼 지옥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리아의 첫째 비극은 지도자를 잘못 만난 것이다. 아사드 가문의 독재가 근 반세기 이어지면서 시리아는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 1971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이 30년 철권통치를 펼치다 2000년 사망하자,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 현 대통령이 정권을 이어받았다.
시리아의 두번째 비극은 소수파의 집권이다. 국민의 70%가 수니파인데 반해아사드는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다.
12%에 불과한 소수종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사드가 택한 것은 무자비한 탄압이다. 알라위파로 군대를 채우고 비밀경찰을 양성해 국민들이 감히 딴 생각을 못하게 감시했다. “개도 국경을 넘어야 짓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수니파의 항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2년 2월, 수니파의 보루인 하마에서 반정부 항쟁이 있었다. 수니파 무슬림 형제단이 하마를 점거하고 알라위 관리들을 살해했다. 그러자 아사드는 알라위파 군인 1,200명을 보내 도륙을 명했다.
당시 3만 여명의 수니파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정권에 대한 도전은 죽음’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시리아의 세번째 비극은 역설적이게도 ‘아랍의 봄’이었다. 2011년 연초 튀니지, 이집트 등지를 휩쓴 민주화 바람이 시리아에도 밀려들었다. 하지만 어설펐다. 3월15일 몇몇 청소년들이 담벼락에 반정부 구호 낙서를 한 죄로 구속되자 부모들이 석방요구 시위를 하고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시리아에도 ‘아랍의 봄’이 오는 듯했다.
그러나 아사드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수천명의 사상자가 나고, 이에 반정부세력이 무력항쟁에 나선 것이 오늘까지 4년 반의 내전으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이슬람국가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득세해 영토를 장악하면서 국민들은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시리안 국민 2,300만명 중 절반이 난민이다. 800만은 국내에서 떠돌고, 400만은 터키, 레바논, 요르단 등 인접국가로 탈출했지만 먹고 살길이 막막해 생사를 건 유럽행 탈주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수가 바다에서 육로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오늘의 시리아 사태는 열강의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결과이기도 하다. 영국, 프랑스, 미국, 이스라엘 등 국가들도 저마다 일정부분 책임이있다.
결국 에게해를 건너지 못하고 터키해안으로 다시 떠밀려온 아이가, 죽어서, 세상에 말을 걸고 있다. ‘우리를 보라’고, ‘우리는 이렇게 죽어가고 있다’고.
‘그들’의 고통을 언제까지나 그들만의 고통으로 남겨둘 수는 없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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