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오성홍기의 물결이다. 대행진에 참가하는 인원만 10여만. 공중에서는 중국군이 자체 개발한 전투기, 전략폭격기, 해군 함재기들이 에어쇼를 벌인다. 지상에서는 열병식이 전개된다.
팔로군, 화남 유격대 등 1만2000여 병력의 중공군 항일부대에다가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10여 개 국 외국 군대도 열병식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 높은 천안문 성루의 한 가운데에는 시진핑이 서 있고 양 옆으로는 박근혜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도열해 있다.
2015년 9월3일. 그날 북경 천안문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미리 가본 것이다. 중국의 첨단무기 공개와 함께 대대적으로 펼쳐지는 열병행진 -이 천안문 전승절 행사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꽤나 으스댔다. 미국과 서방의 쇠락은 기정사실이다. 중국의 부상(浮上)은 이제 아무도 제지할 수 없다. 중국 경제는 성장을 멈출지 모른다. 미국의 신자본주의는 무너졌다. 이제는 ‘베이징 컨센서스’가 대세다. 자만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 자만 감은 먼저 경제전선에서 드러났다.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에만 선뜻 1000억 달러를 내놓았다. 에너지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 공여한 차관만 2000억 달러가 넘는다. 그리고 ‘일대일로(一帶一路)’외교를 전면 가동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외교 안보정책에서도 자만은 하늘을 찌른다. 남중국해에서, 또 동중국해에서 영토분쟁을 일으킨다. 동중국해에서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ADIZ)설정을 선포한 것도 모자라 남중국해에서는 공해상의 산호초를 인공 섬으로 만들어 군사시설을 설치하는 등 도발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의 해를 맞아 급조한 것이 바로 전승절 기념행사다. 일본군이 중국에 항복한 날인 9월3일은 그동안 단순히 군인절로 지켜왔다. 그 군인절을 올해 들어 전승절로 바꾸고 천안문 광장에서 대대적 행사를 펼치게 된 것이다.
왜. “1500여만의 인명이 희생된 항일전쟁, 그 피의 항쟁 과거를 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중국의 미래를 과시하기 위해서다.”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이다. 천자(天子)의 나라 중국의 세계 경영은 하늘의 뜻이다. 그 중국의 군사굴기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거다.
뭐랄까. 중화민족주의의 오만성의 극치, 그 구체적 표현이 바로 외국 군대까지 동원해 벌이는 천안문 열병식인 것이다.
‘중화민족의 파워를 전 세계에 과시하라- 영광의 그 날을 앞두고 그런데 괴변이 잇달고 있다. 2015년 8월12일. 천진(天津)시에서 대폭발이 발생했다. 화학물질 보관 창고에서 발생한 이 대폭발을 타임지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중국내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폭발사고가 천진폭발사고다. 이 참사를 중국 밖에서는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은 어두운 세력들이 어느 날이고 갑자기 엄청난 피해를 몰고 올 거대재해를 촉발시킬 수 있는 그런 나라라는. 그것도 아주 음산한 이유로.”
그 대폭발이 하나의 신호탄이었나. 이어서 전해지고 있는 북경 발 뉴스들은 하나 같이 어둡기만 하다. 증시가 요동친다. 위안화가 절하됐다. 게다가 인권탄압은 가중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경제는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은 중국경제의 하드랜딩 우려다.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말은 사라졌다. 대신 들려오는 것은 ‘차이나 리스크’다. 경제뿐이 아니다. 정치, 외교전선에서도 새삼 들려오는 것은 ‘차이나 리스크’다. 중국 권부(權府) 한가운데서 뭔가 심상치 않은 마찰음이 들려온다. 게다가 위기를 맞은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경제발전의 동력이 꺼졌다. 이는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 상실을 의미해 심각한 정치 사회적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호도 책으로 공산당국은 모험주의적 해외정책을 취할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약한 중국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고만장했었다. 그러다가 몇 년도 못 가 몹시 초조해진 것이 북경의 오늘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고 했던가. 성경 구절이 그대로 구현되는 모습이다.
좌고우면했다. 재고 또 쟀다. 막판까지. 그러다가 끌리다시피 천안문 열병식 참가를 결정했다.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고려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중국이 되기를 바라는 점 등을 감안했다.” 그 같은 변(辨)과 함께 서방 지도자들은 한 명도 참가하지 않은 그 천안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습이 전 세계에 어떻게 비쳐질까. 불현듯 떠올려지는 것은 역시 성경의 한 구절이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 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벌써부터 뭔가 불안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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