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서울에서 어느 빌딩에 갔을 때였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는 사람이 있었다. 반사적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나오려던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아는 사람이 아니라 TV에서 자주 본 코미디언이었다.
TV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면서 TV에서 늘 보는 사람들을 실제로 가까운 사람처럼 느끼는 일이 많다. 지금 버지니아, 로노크의 주민들이 겪는 비통함이 바로 그렇다. 평화로운 시골 소도시에서 주민들은 매일 아침 커피 한잔 들고 지역 TV방송의 모닝뉴스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아침마다 만나면서 가족 같고 친구 같던 기자들이 눈앞에서 살해되는 광경을 목도했으니 주민들의 슬픔은 깊을 수밖에 없다.
지난 26일 그 도시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아침뉴스를 진행하던 여기자 앨리슨 파커(24)와 카메라맨 애담 워드(27)가 생방송 중 총탄 세례를 받고 즉사했다. 과거 동료 기자로 함께 일했던 범인 베스터 리 플래내건(41)은 몇시간 후 권총 자살했다. 플래내건은 이번 범행을 자신의 ‘마지막 방송’으로 생각했는지, 생방송으로 나갈 수 있도록 범행 시간을 맞췄고, 총격현장을 직접 녹화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렸다. 우발적 사건이 아니었다.
TV로 ‘생중계’돼 더욱 충격이 컸던 이번 사건은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 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총 구하기가 셀폰 구하기보다 쉬운 사회, 어떤 미치광이가 총기를 난사하려 들면 사실상 막을 길이 없는 사회, 수백년 인종차별의 망령이 아직도 떠돌며 사람들을 이간질하는 사회 ….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창 물오르는 나무처럼 싱그럽던 젊은이들이 그림같이 평화로운 동네에서 총을 맞고 생을 마감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건이 보도되자 당장 거론되는 것은 총기규제 문제이다. 규제없이 풀어놓은 총기로 인해 미국에서는 연간 3만3,000여명이 목숨을 잃는다. 지난 26일 우리는 세 사람의 죽음을 알고 있지만 그날 총기로 죽은 사람은 그 외에도 90명 정도 더 된다. 미국에서 하루 평균 92명이 총탄에 죽는다. 경찰이 플래내건을 쫓던 4시간 동안에도 미국 어디에선가 10여명이 총으로 죽었다. 총기로 인한 사망이 매 18분에 한 명꼴이다.
이 정도로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식품이든 장난감이든 놀이기구든 당장 판매가 금지되었을 것이다. ‘안전’ 문제에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철저한 것이 미국이다. 단 총기에 대해서는 판금은커녕 규제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총으로 세워진 나라, 총기협회의 돈으로 세워지는 정치인들의 한계이다. 이번에도 규제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미국에서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총보다 더 위험한 것은 병든 정신이다. 아무리 총이 많다 한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바르게 사용한다면 억울한 희생은 제한적일 것이다. 그렇게 하자는 것이 총기규제이다. 분노로 혹은 정신질환으로 시한폭탄 같은 사람들에게 총이 쥐어지니 미국사회가 조용할 날이 없다.
이번 사건에서 정신을 병들게 한 것은 인종차별이었다. 실제 인종차별일 수도 있고, 당사자가 너무 예민해서 차별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미국의 원죄, 노예제도에서 시작된 인종차별의 망령은 아직도 미국사회 구석구석을 맴돌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분쟁을 일으키며 때로 무차별 총기난사 같은 대형사건을 일으킨다. 지난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흑인교회에서 백인우월주의자가 9명을 죽인 사건이 한 예가 된다.
플래내건은 피해망상과 분노조절 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지난 10여년 그는 여러 방송국을 전전하며 동료들과의 불화 속에 밀려나고, 해고 당하고, 그 분을 참지 못해 소송하고 기각되기를 반복했다. 피해의식은 깊어지고 분노는 쌓여 갔는 데, 그 모든 사태의 원인을 그는 ‘인종차별’로 돌렸다.
흑인이자 동성애자인 자신을 동료들이 의도적으로 놀리고 따돌리며 업신여겼다고 했다. 여기자와 카메라맨을 총격 살해한 것도 백인인 그들의 인종차별적 언행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필시 당사자들에게는 기억에도 없는 일, 사실이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이 사회에 인종차별로 인한 분노가 있는 한, 분노를 폭발시킬 총기가 있는 한 유사한 사건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 다른 집단에 대한 배려이다. 모든 다른 것들에 대한 관용이다. 분노의 바이러스, 증오의 바이러스가 퍼져있는 한 누구도 안전할 수는 없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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