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분의 연세가 70안팎 이었으니까 거의 그 연세만큼이나 세월이 지났다. 그렇지만 그날 하면 떠올려지는 것은 지금도 그 때 그분의 눈물이다.
야속하게만 생각됐다. 아버지는 피신했다. 어머니 혼자 그 많은 식구를 돌보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다. 북한 공산군에게 서울이 점령된 지 석 달째다. 할아버지는 그런데 며느리 시중을 받아가면서 손 하나 꼼짝 않고 지냈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목욕탕 문을 여는 순간 너무 놀랐다. 인민군 병사 서너 명이 욕조 옆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 그 때 누군가가 뒤에서 입을 막았다. 할아버지였다. 그리고는 열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그 인민군 병사들에게 옷을 벗으라고 지시했다. 언제 준비했는지 옷가지를 건네주고 며칠 숨어 있다가 투항하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서울이 마침내 수복됐다.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그 환희의 물결 속에서 할아버지를 보게 됐다. 거리에 즐비한 시체들. 그 가운데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 분의 모습을. 공산당이 싫어 일찍이 남하했다. 그런데 왜 인민군 시체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걸까.
야속하기만 했던 할아버지다. 그런데 어찌됐든 그분의 모습은 그때부터 뭔가 달리 보였다.
이제는 80을 훨씬 넘긴 한 노부인의 회상이다. 피비린내 나는 분단의 현장, 그 때, 그 순간들을 할아버지의 그 눈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지가 주요 서평으로 다루었다. 타임지도 꽤나 넓은 지면을 할애했다. 미국식으로 말해 밀레니엄세대에 해당된다. 그런 젊은 탈북자들의 영문 회고록을 실은 것이다. 조셉 킴, 이현서, 김은선이 그들이다.
“위성사진에 나타난 북한의 야경은 칠흑 그 자체다. 전기가 없어서다. 그 광경은 그렇지만 한 가지를 상징하고 있다. 밖의 세계와 완전히 절연된 사회가 북한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블랙홀과 같은 북한. 그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70년째 이어지고 있는 무자비하고, 무책임한 수령유일주의 독재체제다.” 타임지의 지적이다.
법질서를, 또 안전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변화의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 사회에서의 고통의 체험을 그 체제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가 온 몸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미친 사회다. 왕년의 인민군 전사였다. 그런 사람이 굶어 죽는다. 그 굶어 죽은 사람의 장례식에 사람들이 찾아온다. 혹시 뭔가 먹을 것이 있을까 하는 기대에서. 그러니….
뇌물과 부패, 빈곤과 밀고, 그리고 공포가 지배한다. 그 사회에서 거짓말은 생존수단이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탈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뼈 속까지 스며들어 제 2의 본성같이 됐다. 영혼 깊숙이까지 독소가 스며든 사회. 그게 이들의 회고록이 전하고 있는 북한 사회다.
젊은 탈북자들이 정작 충격으로 받아들인 것은 탄압이 아니다. 그 보다는 철저한 방기다. 먹을 것이 없다. 식량을 찾아 사람들은 사방을 헤맨다. 그러나 당국은 전혀 무관심이다. 철저한 세뇌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만큼 지도자를, 당을 믿었다. 그런 그들이기에 충격은 더 컸다.
그들은 마침내 탈출을 한다. 그리고 고통의 기억을 더듬어 책을 펴냈다. 왜. 체제의 희생자다. 역사의 조난자다. 그런 그들을 기억해달라는 몸부림에서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몸부림 속에는 분단의 장벽, 그 너머 암흑에 갇혀 있는 2500만을 기억해달라는 절규도 묻어 있다.
타임, 워싱턴포스트 등의 보도는 다름이 아니다 그 처절한 외침에 대한 응답이다. 동족도 아니다. 그러나 같은 인류로서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겠다는. 그런데 정작 그 외침이 한반도 남쪽에서는 부질없는 메아리로 되돌아오고 있는 느낌이다.
광복 70주년이다. 동시에 분단 70주년이다. 이 70주년을 맞아 들려오는 구호는 온통 ‘기억하자’다. 그런데 ‘광복’에만 방점이 찍혀 있다. 사죄를 않는 아베 일본총리를 규탄한다.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해야한다 등등.
그렇지만 탈북자의 고통을, 분단의 참상을 돌아보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 와중에 전해진 것이 북한의 표준시간 변경방침이다. 2015년8월15일을 기해 주체(主體) 연호도 모자라 시간도 주체 식으로 바꾼다는 거다. 시간마저 분단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터진 게 지뢰도발이다. 무대책이다. 갈팡질팡에, 우왕좌왕이다. 일찍이 보아온 대로다. 왜 그토록 허둥지둥인가. 말 뿐이다. 기억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사실에 있어 망각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북한의 ‘막가파’식 행태에 군 따로, 통일부 따로, 청와대 따로 논 것이 아닐까.
“서울과 평양 간의 거리는 불과 193km이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세대가 느끼는 거리감은 수 광년(光年)이상 떨어져 있다.” 관심이 멀어진다. 기억이 희미해진다. 그런 남북관계에 대해 디플로매트지가 내린 진단으로, 분단극복, 다시 말해 통일에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질책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 된다-. 결국은 한 여름 밤의 꿈으로 지나간 광복과 분단 70주년. 이와 함께 불현 듯 떠올려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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