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창흠(논설위원)
아베 신조 일본총리는 끝내 직접 사죄를 회피했다. 일본 패전일인 8월15일 전날에. 전후 70년 담화에서 자신의 사죄는 언급하지 않았다. 전직 총리들의 반복된 사죄로 충분하단다. 오히려 다음 세대에게 사죄를 반복하는 숙명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자신의 사죄 없이 과거사의 빚을 털어버리겠다는 꼼수다. 언제나 은근슬쩍 빠져나가듯.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은 인정하지 않았다. 역대 내각의 반복 사죄는 계승한다면서도 그들이 인정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은 거부한 셈이다. 과거 역사 왜곡의 인정과 사죄 없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겠다는 의도다. 항상 아닌 척해왔듯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의 주요 역사 단체가 일본국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한 것과는 딴판이었다. ‘전장의 그늘에는 심각하게 명예와 존엄을 훼손당한 여성들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우회적으로 거론했다.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관한 언급으로 구색을 갖추기 위한 면피성 발언을 한 것이다. 늘 ‘눈 가리고 아웅’ 하듯이.
이처럼 아베의 담화는 일본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과거형으로 에둘러 표현하는데 그쳤다. ‘아베의 물 타기 사과는 진정한 시험에서 불합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다.
결국, 아베는 이번에도 사죄 없이 구렁이 담 너머 가듯 했다. 지난 미 의회 연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늘 그런 식이다. 여전히 역사의 왜곡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반성도 사죄도 안 한다. 그냥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밀고 나가고 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그리하지 않겠는가. 일본은 툭 하면 역사를 왜곡한다. 틀린 것을 옳다고 우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말과 글로 교묘하게 미화까지 시킨다. 그러다보니 우리도 모르게 왜곡된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앞으로는 절대 쓰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한일합방도 그 중 하나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합쳐 한 나라를 구성 한다’는 뜻으로,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편입하면서 그 행위를 미화한 말이다. 합의가 아닌 강제로 점령당했으니 ‘한일병합’으로 바꿔 써야 마땅하다. 일제시대도 마찬가지다. 옳은 표현은 일제강점기다. 일본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1910년 8월29일 강제 병합한 경술국치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여 히로히토가 패전 선언을 하는 1945년 8월15일 광복까지의 시기를 일컫는 말은 일제강점기가 맞다.
종군위안부라는 용어는 절대 써서는 안 될 말이다. 일본군의 성노예로 고통당한 분들을 또 한 번 울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종군은 종군기자라는 쓰임에서 보듯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 다닌 것’을 의미한다. 정신대 역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뜻이다. 종군위안부나 정신대는 일본이 왜곡한 말이다. ‘일본군 위안부’나 ‘일본군 성노예’를 쓰는 게 옳다.
‘이조 500년’ 따위의 말도 쓰지 말아야 한다. ‘이조(李朝)’란 ‘이씨 조선’을 줄인 말이다. 일제 가 조선의 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다. ‘이씨들의 나라’란 표현이다. 이는 옛날에 중국이 우리나라와 주변국을 낮잡아 불렀던 오랑캐와 똑 같은 말이다. 그러니 ‘이조 500년’ ‘이조시대’. ‘이조백자’ 등의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표현은 일본이 우리를 오랑캐쯤으로 여긴다는 것에 박수를 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말을 절대 써서는 안 될 일이다. 말과 글에는 자긍과 민족혼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어떤 말과 글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민족의 역사와 뿌리를 잃게 하기도 하고, 뿌리를 내리게도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툭하면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우리 주변에는 그들로 인해 고통당하는 이들이 여전이 많이 있다. 일본이 왜곡한 말을 사용하는 것. 그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기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아베의 담화는 무늬뿐인 사죄로 그쳤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해 일본의 역사에 대한 언행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일본이 왜곡한 말을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새겨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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