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의 한 치과의사가 짐바브웨의 명물 사자를 죽였다고 해서 엄청난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한달여 전 짐바브웨의 한 국립공원 밖에서 수사자 한마리가 머리가 잘려나간 채 발견되었다. 사자는 사파리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세실이라는 사자였고, ‘라이언 킹’ 같이 잘 생긴 이 사자를 죽인 ‘범인’은 월터 팔머라는 미국인으로 확인되었다. 표범, 코뿔소 등 맹수 사냥광으로 알려진 그는 국제적 ‘공공의 적’이 되었다. 영화 ‘라이언 킹’을 보며 자란 미국인들의 분노는 특히 심해서 멀리 타주에서까지 그의 동네로 날아가 규탄시위를 벌였다. 인터넷에는 비난 댓글이 홍수를 이루었다.
대중의 분노는 타당해 보였다. 사냥이 금지된 국립공원에서 화살을 쏘며 수십시간 쫓아 사자를 공원 밖으로 내몬 후 총격살해하고 머리를 전리품으로 잘라간 사냥방식은 너무 잔혹했다. 돈 많은 미국인들이 아프리카의 대초원을 누비며 희귀동물들을 사냥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건의 다른 면을 본 것은 며칠 후였다. 짐바브웨에서 온 유학생이 뉴욕타임스에 기고를 했다. 분자생물학 박사 과정의 구드웰 은주가 쓴 글의 제목은 “짐바브웨에서는 사자 죽었다고 울지 않는다”.
그는 전화와 SNS로 갑자기 ‘세실’ 관련 메시지들이 밀려들어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세실이 누구지?’ 하던 그는 뉴스를 보고 나서야 그것이 미국인 치과의사가 죽인 사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순간 그의 가슴은 본능적으로 환호했다고 그는 썼다. ‘사자 한 마리 줄었으니 가족들이 그만큼 덜 위험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다.
야생동물 보존구역 가까이 있는 그의 고향에서 사자를 사랑하거나 사자에게 별명을 붙여주는 일 따위는 없다고 그는 말했다. 사자는 가축을 잡아먹고 사람을 물어 죽이는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동네사람들이 사자 등 맹수에 물려 죽거나 불구가 되곤 한다.
그는 썼다. “지난 10년 동안 외국인들이 와서 합법적으로 죽인 사자가 800마리인데 사자 한 마리 죽었다고 갑자기 요란을 떨다니, 서커스도 이런 서커스가 없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없는 미국인들이 아프리카 동물들에는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다.”는 내용이다.
야생동물 보호도 중요하지만 사람에게 사자의 생명보다 귀중한 것은 사람의 생명. 사자의 죽음에 호들갑스럽게 분노하는 우리가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하는 불의에 대해서는 왜 더 분노하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분노의 계절이다. 흑인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이 백인경관의 총격에 사망한 지 1년, 퍼거슨 시에는 지난 며칠 또 다시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지난해 8월9일 브라운은 경찰의 총에 죽고, 총을 쏜 백인경관은 과잉대응 의혹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풀려나면서 퍼거슨은 불안했다. 대대손손 인종차별에 대한 한이 깊은 성난 민심이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예상대로 브라운 사망 1주기 추모시위는 약탈과 폭력으로 격화하고 인근의 한인업주들은 또 다시 폭동이 날까봐 불안에 떨었다.
50주년을 맞은 LA의 와츠폭동도 발단은 사소했다. 흑인청년이 음주운전하다 백인경관의 단속을 받던 중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흑인을 사람취급하지 않는 경찰에 대한 지역민들의 분노가 활화산 터지듯 폭발했다. 8월11일부터 17일까지 방화와 약탈, 총격전의 아비규환 속에서 34명이 숨지고 1,000여명이 부상했다.
원인은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었다. 취업, 거주,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차별이 극심했고, 그로 인해 빈곤에서 헤어날 길 없는 흑인들의 절망감에 백인경관이 불을 붙였다.
50년이 지난 지금, 법은 차별을 금지하고 미국은 흑인대통령을 맞았다. 그런데도 ‘백인경관-흑인용의자, 경찰총격-용의자 사망’이라는 똑같은 구도의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흑백 간 소득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흑인 대졸자는 취업 시 고졸의 백인 전과자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
시민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어떻게 분노하는 가가 사회의 앞날을 결정한다. 인종차별, 성차별 폐지로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은 그 부당함에 대한 분노 표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권운동과 여권운동이다. 그럼에도 미묘하게 남아있는 차별의 뿌리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분노가 필요하다.
김수영<‘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이 말하듯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는 대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그런 분노다. 의로운 분노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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