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 사이의 무수한 갈등과 사회적 분열, 그리고 퇴보의 중심에는 편견과 무지가 자리 잡고 있다. 편견은 타인이나 타자 집단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되며 무지는 현실과 실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결여돼 있는 것을 뜻한다. 편견과 무지는 조금 의미가 다르지만 실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부정적 상태라는 점에서는 같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망국병’이라 불리는 지역감정을 한번 들여다보자. 호남과 영남은 상당히 오랜 기간 서로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 왔다. 물론 이런 좋지 못한 감정은 여러 가지 이유들에 의해 형성되고 쌓여 왔을 것이다,하지만 지역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 두 지역 주민들의 상대지역에 대한 감정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는 않다. 지역감정 연구를 보면 대구에서 호남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가진 사람은 43% 정도이다. 광주에서 영남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은 35% 정도다.
문제는 상대가 우리에 대해 갖고 있을 것으로 여기는 감정에 대한 인식이다. 대구 사람들은 호남인들의 86%가 자신들을 나쁘게 생각한다고 믿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광주 사람들은 영남인의 83%가 호남에 대해 배타적 감정을 갖고 있을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감정의 실제와 인식 간에는 이처럼 황하의 강폭만큼이나 넓은 괴리가 존재한다.
사회학자인 플로이드 올포드는 이처럼 사실과 다르게 오해하여 잘못된 판단을 하는 대중의 집단적 태도를 ‘다원적 무지’라고 불렀다. 지역감정이 한국의 대표적 다원적 무지의 사례라 한다면 소득불균형을 둘러싼 실제와 인식의 괴리는 전 세계적인 다원적 무지의 사례라 할 수 있다.
날로 심화되고 있는 소득 불균형은 현재 전 지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소득 불균형의 실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이나 유럽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국가별 차이는 있는데 유럽인들은 소득 불균형에 대해 비교적 실상에 가깝게 알고 있는 반면 미국인들은 실제와 너무 동떨어진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관심 있게 봐야 할 사실은 국민들이 소득 불균형의 실태를 정확히 알고 있을수록 계층 격차가 적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의 무지와 잘못된 인식은 미국을 선진국들 가운데 가장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나라로 만들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방관을 초래하고 있다. 반면 유럽은 소득 격차가 미국처럼 크지 않음에도 유권자들은 현실을 한층 더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니 정부가 문제 시정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국민들의 복리를 입에 올리지만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한 국민들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생각은 별로들 하지 않는다. 국민, 그리고 유권자들의 무지는 권력의 기득권 유지와 게으름에 더할 수 없이 좋은 토양이 된다. 심지어 무지한 국민, 게으른 유권자를 더 많이 만들어 내기 위한 교묘한 술책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니 좀 더 나은 사회와 미래를 위한 해답은 하나 밖에 없다. 깨어 있는 유권자들이 그것이다. 정확한 처방은 정확한 진단에서 시작된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정확한 지식과 인식이 바탕돼야 한다. 그리고 지식인들과 언론이 그 선두에 서야 한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은 자기소임을 방기하고 있는 이른바 ‘지식인들’과 언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침 미 증권거래위원회가 지난주 대다수 상장기업 최고경영자와 종업원들 간 임금 격차가 얼마나 되는지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가결했다. 지난해 발표된 하버드 경영대 논문에 따르면 미국인 대다수는 대기업 경영자들과 일반 근로자 사이의 임금비율이 실제로는 300대 1 수준인데도 30대 1 정도로 훨씬 격차가 적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실과 인식 간의 괴리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크다.
이번 조치가 비록 제한적이긴 해도 경영자들의 탐욕을 억제하고 대중의 무지를 깨뜨리는데 조금은 기여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 사회적, 경제적 현실과 실제를 있는 그대로 깨닫고 모순과 부조리를 시정하기 위해 행동하는 시민들이 있을 때 비로소 사회는 진보할 수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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