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군사박물관으로 돼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전쟁박물관이다. …남경대학살. 일본군 731부대의 생체실험. 성노예로 팔려간 종군위안부. 과거 일본군 만행을 알리는 참고 물들도 열람할 수 있을까….”
“남경대학살은 남경사건 정도로 얼버무려 간단히 언급됐다.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미군의 도쿄대공습 이후 민간 피해만 기록돼 있다. … 첫 전시실에서부터 흠뻑 묻어나는 것은 일본국수주의(國粹主義)의 진한 체취다.”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의 부속 박물관 유슈칸(遊就館). 10년도 훨씬 전 시카고 선 타임스의 닐 스타인버그가 그 군사박물관을 방문했다. 그리고 남긴 글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논쟁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전쟁이다. 과거의 전쟁이 상징적 형태로 현재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생존자의 기억과 증언, 학자들의 재해석 작업 등을 통해서. 그 전쟁에서 미국은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어지는 그의 독백이다.
자학의 역사가 지배한다. 미국의 덕목은 부정된다. 치부만 확대 해석된다. 오늘날 미국의 공교육이 그렇다. 그러다보니 태평양전쟁의 승자 미국은 가해자같이 되어 버렸다. 그 한탄이다.
그 현장의 하나가 해마다 열리는 히로시마의 평화 기념식이다. 핵무기의 비(非)인도성을 규탄한다. 그러면서 그 원폭의 최초 피폭국가가 일본임이 새삼 강조된다. 왜 원폭투하로 전쟁은 종식될 수밖에 없었나. 이 부문에 대한 성찰은 무시된 채.
원폭투하 70년, 종전 70년을 맞은 올해의 히로시마 평화 기념식은 더 성대히 거행됐다. 행사 참가국만 100개국이 넘었다. 미국에서는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대사에다가 국무부 차관도 참석했다.
핵 피해의 참상, 그 비인도성을 과소평가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 히로시마 평화회의에서 뭔가 감지되는 것이 있다. 일본의 집요함이라고 할까, 교묘한 외교 전략이다.
세계의 주요국가로 히로시마 평화회의 70주년에 참가하지 않은 나라는 중국과 한국 두 나라뿐이다. 중국은 그렇다고 치고, 주일 한국대사도 그 행사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그 한국은 국제사회에 어떤 나라로 비쳐질까. 그래서 하는 말이다.
이와 퍽이나 대조적인 것이 한국의 모습 같다. 광복 70주년이 내일 모레다. 그런데도 분위기랄 것이 없다는 것이 서울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라는 것이 있어 공식적으로 50개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별로 눈에 들어오는 게 없다. 기껏해야 8월14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고속도로를 무료개방한 조치가 눈에 뛴다면 뛰는 정도라는 거다.
그 공휴일 제정도 그렇다. 소비 진작을 위해서라는 거다.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담론제시도 없다. 단선적인 경제적 논리만 제시됐을 뿐이다. 무엇을 말하나.
집요함도 없다. 거기다가 한마디로 전략부재의 모습이다. 그게 한국정부라면 지나친 말일까.
지난 3년간 내내 현안문제였던 일본과의 과거사 전쟁을 보자. 그 전쟁에서 피해 당사자인 한국은 분명 도덕적 우위를 점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대폭 양보, 아베 정부가 제시하는 타협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게 일본 미디어들의 보도다.
대미 외교전에서 밀렸다. 그토록 자신하던 대중 외교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강대국외교에 미숙했다. 그래서 완급조절의 타이밍을 놓쳤다. 초조감 가운데 한국정부는 결국 저자세를 보이게 됐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 아베 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21세기 구상 간담회’가 작성한 아베 담화 기초자료 내용도 그렇다. 미국에 있어 한국 보다는 일본이 더 중요한 국가라는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입장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리고 날로 떨어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다시 말해 지도자 리스크도 계산에 넣었다.
이 같은 정교한 수읽기를 기반으로 허를 찔러왔다. 한일관계악화의 전적인 책임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매달리는 한국에 있다는 식으로.
일본과의 과거사를 둘러싼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베의 종전 70주년 담화가 무엇을 담았느냐에 따라 전선은 또 다시 확산될 수도 있다. 그 외교전쟁을 승리로 이끌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일까. 확고한 민주주의 가치관이다.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관 공유는 약소국이 강대국과 외교를 할 때 가장 중요한 무기다. 작은 나라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하에 방향성을 정하고 보편타당성에 가치관에 입각한 외교정책을 펼 때 강대국은 무시할 수 없다.
엎드려 절 받기는 이제 그만, 일본을 일본 그대로 냉철히 보면서 확고한 민주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코리안 내러티브를 정립할 때가 된 게 아닐까. 광복 70주년이란 시점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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