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의 예산적자는 유례없는 낮은 금리가 십년 가까이 계속되는 덕분에 그 심각성의 정치화가 덜 된 감이 있다. 그동안 오바마 정부의 재정적으로 무책임한 정책들로 인해서 예산적자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부채에 대한 이자가 너무 낮으니 무식한 공화당 의회지도자들이 오바마 정부가 끝날 즈음에야 난리를 피우게 될 것이란 의미다.
예산적자 문제는 이제 국방예산의 감축으로 이어져 앞으로는 지구 어디에서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미지상군 파병은 불가하게 되었다. 예전 냉전시대처럼 미국이 떵떵거리며 세계의 경찰노릇을 하기에는 경제적 뒷받침이 안 된다는 결론이다.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고전적 현상이 분명해졌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국의 해공군력 도움은 가능하겠지만 실질적 체감 수준의 지상군 파병은 절대 불가능하다. 예산의 뒷받침이 없고, 병력수준도 그렇게 안 된다. 미국조야의 여론도 많이 변했다.
미국의 현재 여론은 최근의 주요 칼럼과 리포트들을 보면 이렇게 되어가는 것 같다 :한국과 미국의 군사동맹은 여러 여건들이 지금과 확연히 다른 시대에 불가피하게 생긴 것이며 미국의 통치이념에 부합하는 세계평화와 질서유지를 위한 이상적 동맹의 필요는 이제 낡은 사고에 기초한다. 중국과 소련이 뒷받침한 북한의 침공에 맞서 유엔 깃발아래 연합군들의 도움으로 적화를 면한 대한민국은 현재 번영을 이룬 만큼 미국에 의존하는 기존의 군사적 협력관계의 변화를 요구한다.
한국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정착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사적 도움에 의존하는 게 체질이 되어버린 감이 있다. 전시작전권 이양문제만 해도 그렇다. 아직도 독자적 국방이 불가능하다는 한국정부의 변명은 이제 한국을 동북아의 상당한 파워로 인식하기 시작한 미국조야의 전문가들에게 곱지 않은 응석으로 보이는 듯하다. 휴전 후 60여년이 지나고 엄청난 경제력을 지닌 나라가 국방을 다른 나라에 의지하고 있는 현실은 누가 봐도 좀 부자연스럽다.
지금의 한국은 북한보다 수십배의 엄청난 경제력에 인구도 두 배가 넘고 정치도 안정된, 사람으로 치면, 성인이 된 나라인데도 국방에서 미국 의존도가 너무 높다고 미국의 조야는 믿는 것 같다. 미군주둔비용을 한국이 더 부담하고 있지만 미국의 실제 코스트에는 턱없이 낮은 비용을 부담할 뿐이다. 미국이 한국을 태평양 방위의 절대 마지노선으로 보느냐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싱크탱크나 정책 입안자는 없다. 한반도방위가 미국안보에 절대적이진 않다는 설명이다.
나날이 노골화하는 중국과 소련의 동북아 세력화를 억제하는 데는 일본과의 군사연합이 충분하다고 믿는 미국의 전문가들이 많은 현실에서, 정치인들의 적극적인 한국방어를 약화시킬 개연성은 많다. 좀 코미디언 같은 면이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한국은 공짜로 산다. 왜 미국이 부유한 한국방위를 도맡아야 하는가. 미친 짓이다”라고 한 말이 미국 보통사람들이 가진 기분일 것이다. 트럼프의 얘기를 웃어넘기기 힘들다.
한국의 좌파성향 이론가들이 운동권 교육기본으로 옛날부터 하던 얘기가 있다. 미국의 방위산업 세력들이 전쟁을 꼬드겨 미국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군수산업에 도움을 주는 먹이사슬을 형성한다는 엉터리 같은 얘기다. 미국이 한국전 참전 때문에 1950년대 초에 극심한 예산적자와 그 후에 온 인플레를 정리하느라 혼난 경제사를 알고 있는 이들에겐 완전 코미디 수준이지만, 이 군수산업 콤플렉스 얘기는 한국좌파들에겐 진지한 교육과정이 되었다.
이제 한국도 좋든 싫든 말로만이 아닌 진짜 자주국방을 할 때가 되었다. 중국 눈치를 많이 보는데, 한국이 중국을 어디까지 믿고 국방정책을 세워야할지, 핵무기 전술화가 상당한 수준까지 진전된 것 같은 북한에 남한 자체의 핵무기 없이 어떻게 자주 국방을 할 수 있을지, 외교안보 문제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미국경제와 연방예산이 한국방위를 먼 장래까지 책임질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제는 제발 한국의 좌파나 우파나 새로운 시대환경에 대응하는 이론전개를 할 때 정확한 과거와 현재의 배경 이해에서 출발하기를 빈다. 옛날 논리는 안 통하는 새 시대가 열린지 오래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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