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나오면 계절을 잊는다. 냉방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지금이 여름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여직원들은 대개 출근하자마자 두터운 겨울 스웨터를 걸치거나, 담요로 무릎을 덮고, 책상 아래에 아예 난로를 켜두기도 한다. 반면 남자직원들은 반팔셔츠 차림으로 잘 지낸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 회사만의 여름풍경이 아니었다. 고층빌딩 사무실마다 몸이 얼어붙을 듯 실내온도가 낮아서 여직원들은 겨울캠핑 가는 수준으로 두르고 걸치고 싸맨다고 한다. 남자직원들은 그 옆에서 “요란스럽기도 하다”하고 있을 뿐이다.
“왜 그럴까?”에 대한 답을 네덜란드의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사무실에만 오면 왜 여자들은 오들오들 떨고 남자들은 쾌적한 걸까? 지난 3일 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건물들은 1960년대 개발된 적정온도 측정등식에 기초해 실내온도를 고정 시킨다. 대기의 온도·속도, 사람의 신진대사 등 여러 변수들이 적용되는 데 이때 ‘체중 154파운드의 40세 남성’을 기준으로 한 것이 남녀가 유별한 ‘여름풍경’의 원인이었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신진대사율이 높고 신진대사가 활발할수록 몸에서 열이 난다. 같은 온도에서 여성이 추위를 타는 이유이다. 반세기 전 사무실은 남성들의 독무대였으니 그에 맞춰 실내온도가 정해진 것은 타당했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사무실 구성원이 남녀 거의 반반인 데, 전통적 남성중심 문화의 흔적이 냉방시설 안에 보존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여자가 왜 나서나?’ 하는 차가운 시선, ‘여자가 능력이 될까?’하며 못 미더워 하는 시선, ‘집에서 살림이나 할 것이지’ 하는 배타적 시선 … 사무실의 냉랭한 기류에 물리적 낮은 온도까지 더해졌으니 오랜 세월 여성들은 추웠다. 여성의 ‘빙하기’였다.
조 바이든 부통령이 내년 대선 민주당 후보경선에 나갈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나왔다. 공화당 후보경선이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로 시끌시끌한 데 반해 민주당 진영은 너무 조용한 것이 문제. ‘힐러리 대세론’이 지배적인 경선 지평선에 바이든 출마설이 연기를 피우자 민주당 측은 일단 생기를 띄는 분위기다. 바이든은 아무 말이 없는데 ‘힐러리 대 바이든’ 격돌을 둘러싼 분석들이 요란하다. 분석들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남성과 여성을 가르던 전통적 경계가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우선 ‘여성 대통령’ 가능성에 이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2008년 대선 때만 해도 힐러리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대한 뜨거운 기대 한편으로 ‘여성이 대통령?’이라는 부정적 시각에 맞서야 했다.
그리고 7년, 그는 국무장관으로 업무수행 능력을 다시 한번 과시했고, 여론은 시간이 흐른 만큼 ‘여성 대통령’에 편안해졌다. 미국에서 여성의 마지막 유리천장, 대통령직이 가시권 안으로 들어왔다.
둘째, ‘기득권자 남성 대 도전자 여성’의 구도가 뒤바뀌었다. 지난 반세기 여성의 사회진출은 도전의 역사였다. 남성이 장악한 세상에서 아웃사이더로, 후발주자로 여성은 이를 악문 도전정신 없이 한발도 내딛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반대다. 바이든이 경선에 나설 경우, 힐러리의 막대한 조직력과 자금력 앞에서 어떻게 도전할 수 있을까가 최대 관심사이다.
셋째, ‘남성은 능력, 여성은 진정성’으로 대결하던 구도도 뒤바뀌었다. 남성 정치인들의 노련한 정치수완에 맞서 여성후보들은 투명성, 가족중시 가치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편안함을 무기로 삼았다. 힐러리와 바이든 대결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예상된다.
힐러리는 한마디로 일반 유권자들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20여년 대중 앞에 섰지만 ‘도무지 속을 드러내지 않아 알 수가 없다’ ‘감추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신뢰하기 힘들다’ ‘거리감이 있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반면 바이든은 ‘너무나 인간적인, 좋은 사람’이란 평이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정직한 사람, 함께 맥주라도 마시고 싶은 편안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말을 너무 여과 없이 해서 말실수가 끊이지 않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긍정적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치인들의 가식에 유권자들이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힐러리가 기존 남성 정치인들의 장단점을 모두 안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 고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힐러리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뿐 유권자들이 더 이상 ‘여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은 진일보이다. 여성의 ‘빙하기’가 끝나는 것 같아 반갑다. 하지만 정치는 국민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눈물을 닦아 주는 일 - 힐러리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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