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간 스포츠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뉴스는 NFL 뉴잉글랜드 패이트리어츠의 수퍼스타 쿼터백 톰 브래디가 지난 1월 플레이오프 경기서 의도적으로 바람 빠진 공을 경기에 사용했다는, 이른바 ‘디플레이트게이트’(deflategate)였다. NFL 사무국은 이 의혹이 상당한 근거가 있다는 판단 아래 브래디에 대해 정규시즌 4경기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선수노조와 브래디 측이 이에 불복,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을 밝혀 징계가 언제부터 시행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브래디가 누구인가.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NFL 최고의 인기 스타이다. 그의 이름이 박힌 저지는 NFL 선수들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다. 물론 뛰어난 외모와 세계 최고 모델과의 결혼 등 외적 요인들도 인기에 한 몫하고 있지만 역시 인기의 가장 큰 바탕은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실력과 성적이다. 그는 다른 선수들이 평생 한 개도 끼어보기 힘든 수퍼보올 우승반지를 무려 4개나 갖고 있으며 수퍼보울 MVP로 세 차례나 선정됐다.
이처럼 뛰어난 실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온 그였기에 디플레이트게이트가 확산되면서 팬들의 실망감 역시 그에 비례해 커지고 있다. 브래디는 스캔들이 터져 나온 이후 줄곧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NFL이 임명한 특별조사팀은 브래디가 장비담당 직원 2명이 바람 빠진 공을 준비한 사실을 ‘적어도 대체로 알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법. 브래디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인정했더라면 명예와 평판에 일시적 흠집은 났겠지만 스캔들은 조속히 수습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브래디는 오히려 사태를 키우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그는 자신의 연루 사실을 부인했을 뿐 아니라 NFL이 요구한 휴대폰 제출을 거부하고 오히려 이를 부숴버리는 방식으로 폐기해 버렸다. 셀폰에는 1만여 건의 텍스트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셀폰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메시지들은 날아갔다. 연루와 부인의 단계를 넘어 은폐를 시도한 것이다.
그가 휴대폰을 부숴 버린 날은 공교롭게도 NFL이 제출시한으로 통보한 날. 이날 브래디는 측근을 시켜 셀폰을 부숴버렸다, 그리곤 무응답으로 일관하다가 수개월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밝혔다. 그가 밝힌 파기 이유는 “새로운 셀폰을 살 때마다 그렇게 해 왔다”는 것이었다. 정말 아무 잘못이 없다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 줄 유일한 증거가 됐을 셀폰을 부숴버린 이유치곤 군색하기 짝이 없다.
스포츠의 생명은 공정성이다. 바람 빠진 공은 이런 공정성을 크게 저해했다. 그 뒤에 따라야 했던 것은 시인과 사과였다. 브래디는 “이기고 싶다는 욕심에 실수를 저질렀다. 팬들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너무 오랜 인기에 도취된 탓인지 그의 판단력과 도덕적 민감성은 크게 떨어진 상태로 보인다.
‘평판 닥터’로 불리는 스캔들 수습 전문가 마이크 폴은 “범죄보다 더 나쁜 것은 은폐”라고 따끔하게 지적한다. 1차 범죄행위는 대부분 탐욕과 질투 같은 인간적 취약성과 순간적 판단 실수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 만큼 이해와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은 있다. 그러나 은폐는 계획적이고 의도적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가려 진실을 덮으려는 사악한 시도이다. 그래서 은폐는 원천적인 일탈이나 불법행위보다 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역사의 변곡점이 된 큰 사건들은 은폐가 발단이 된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워터게이트이다. 워터게이트는 1972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선거본부에 전직 정보요원이 침입했다가 걸린 사건이다. 사실 별 것 아닌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로 인해 닉슨 대통령은 사임이라는 수치를 겪었다. 그가 사건을 은폐하도록 지시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론은 들끓었고 닉슨은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최근 몇 년 간 한국을 뒤흔든 스캔들도 대부분은 은폐 의혹을 둘러싼 것들이다. 여기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골은 국정원이다. 대선 개입에서부터 해킹에 이르기까지 의혹은 다양하다. 그런데도 진실을 드러내는 일에 협조하기보다는 부인과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불법행위보다 이런 태도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브래디의 어리석음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누군데 감히 나를…”이라는 오만이다. 브래디가 부인과 은폐, 그리고 소송을 통해 자신에게 내려진 징계의 칼날은 비껴갈 수 있을지 몰라도 평판의 법정에서는 이미 중형이 내려졌다. 자신을 파괴하는 가장 위험한 흉기는 오만임을 브래디를 통해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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